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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Jan 11. 2023

정신과 진료실에서 전하는 이야기

2. ‘~가 되면’이라는 말의 진실 (1) 

  현재 고통 중에 있는 환자분께 종종 묻는 질문 중 '무엇이 있으면 지금보다 나아질 것 같으세요?'가 있습니다. 이 질문은 환자분을 어렵게 하는 상황과 희망사항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 질문의 답은 '~가 되면'으로 정리되는데, 크게 (1) 시간이 흘러 특정 상황이 변하는 것 (닥친 시험이 끝나는 것, 새해가 되는 것 등), (2) 남이 바뀌는 것 (00가 내 마음을 알아주면, 내 사랑을 받아주면 등), (3) 내가 바뀌는 것 (지금보다 마음이 편안해지면, 운동을 열심히 해서 건강해지면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 중 (1) 시간이 흘러 특정 상황이 변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 볼게요.


  우리는 어렸을 때, '수능이 끝나면' '대학생이 되면' '돈을 벌게 되면' '결혼하면' '아이를 가지면' 이러저러하게 될 거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어떤 분이 그러시더군요. 그 이야기는 마치 수능만 끝나면 살이 다 빠지고 미인이 되고 대학생만 되면 연애를 할 수 있고 돈만 벌 수 있게 되면 갖고 싶은 것 다 살 수 있게 되고 결혼만 하면 행복해지며 아이만 가지면 어른으로써 살 수 있다는 느낌으로 들렸다고요. 그래서 막연히 그때를 기다렸는데, 막상 수능이 끝나도 외모는 별반 차이 없었고 대학생이 되었다고 항상 낭만적이었던 것도 아니었으며 결혼을 했다고 매 순간 행복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신은 인생의 허상을 좇아온 것 같다며 허탈한 표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가 되면'을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가 되어서 그때 얻을 수 있는 자유로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면'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수능이 끝나고 신경 써서 식사 관리를 하고 운동을 하면 체중을 관리할 수 있을 것이고, 대학생이 되어 대화와 만남의 폭을 깊게 하면 그에 걸맞은 멋진 이성을 만날 가능성이 높아질 테니까요. '~가 되면'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어른은 아이들이 이런 점을 착각하지 않도록 잘 가르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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