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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Jan 10. 2023

정신과 진료실에서 전하는 이야기

1. 세상에 쉬운 치료는 없습니다 (f. 감사인사)

  아픈 사람은 병원에 갑니다.

  진찰을 받고 처방을 받습니다. 처방대로 약을 먹거나 의사가 시키는 일을 합니다. 일견 쉬워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 내 몸 상태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의사를 찾아가서 솔직하게 말해야 합니다. 일단 여기서 첫 번째 어려움이 찾아옵니다. 무엇을, 얼마나 솔직하게 말해야 할까요? 그리고 그걸 말한 다음 찾아올 감정을 감내할 수 있을까요? 누구에게도 결코 알리고 싶지 않던 부끄러운 이야기를 하고 나서 상대방을 편안하게 만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종종 첫 만남부터 답답합을 빨리 해소하고 싶다며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고 후련하다고 말씀하는 분이 계십니다. 하지만 자신을 너무 빠르게 오픈하고 나면 치료가 중단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말하고 싶은 만큼’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이야기를 하라고 당부드립니다. 마음을 여는 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충분한 시간이 지난 후에는 훨씬 자연스럽게,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요.


  첫 만남에서는 대개 현재의 불편함(증상)을 파악하고 필요하다면 약물 처방과 간단한 행동 약속을 처방합니다. 약을 먹는 것은 일견 쉬워 보이지만 막상 ‘이 약이 내 뇌에 무슨 영향을 미칠까’ 하는 걱정이 생기면서 약을 삼키기는 쉽지 않습니다. 약을 먹는다고 모든 증상이 깔끔하게 사라지는 것도 아니기에 최소 1-2주를 꾸준히 복용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기다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요.

  간단한 행동 약속도 대개는 간단하지 않습니다. '식사를 챙겨드세요' '아침에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세요'와 같은 것이 쉽게 지켜졌더라면 굳이 병원에 와서 진료를 볼 필요가 없을 테니까요. ‘의사가 하는 말이니 해 봐야지' '약속을 지켜야지'와 같은 굳건한 마음에 없다면 행동 약속을 지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쉬운 치료는 없습니다. ‘이대로는 안 돼, 더 나아지고 싶어’ 하는 환자분의 동기가 없다면 이 어려움을 극복해낼 수 없습니다. 환자분이 따라주시지 않는다면 아무리 훌륭한 의사도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진료실에서 처음 본 의사의 말을 믿고 기꺼이 따라주시는 환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처음부터 기꺼이 따르지 않으시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진료실을 계속 찾아주시는 분들께도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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