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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Jan 18. 2023

정신과 진료실에서 전하는 이야기

8. 몸이 하는 이야기

  한국의 중년 남성은 본인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유교적인 문화 배경, 고도 성장기에 묵묵히 희생을 감당하며 살아온 삶의 경험, 남자라는 성별에 부과된 기대와 책임, 타고난 성향 등이 서로 영향을 주며 '감정 표현을 피하는' 성향을 만들어 온 것 같습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남자애가 왜 우니'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만 운다'와 같은 말을 공공연하게 하곤 했죠. 

  여성들도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남아선호사상 문화 배경, 온 가족을 묵묵히 뒷바라지하는 삶의 경험, 여자라는 성별에 부과된 기대와 책임, 타고난 성향 등이 서로 영향을 주며 이와 같은 성향을 만들어 온 것 같습니다. '네가 참아라' '뭐 그런 걸 갖고 호들갑을 떠니'와 같은 말들은 알게 모르게 '감정을 표현하지 말아라'는 신호를 주었던 것 같습니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분들의 특징은 '몸으로 말한다'입니다. 어떻게 지냈는지 물어보면 어디가 아팠는지, 어떤 병원에 갔는지로 대답하고, 이러저러한 상황에서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물어보면 검사 결과를 상세히 설명하며 그래서 많이 아팠다고 대답하십니다. 


  주변 사람들은 처음에는 당사자의 신체적 불편감을 걱정하고 관심도 갖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 '꾀병 부린다' '호들갑 떤다'며 놀리거나 무시하기도 하지요. 몸이 아픈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자기가 불편하다는 말을 못 하면 몸으로 표현하는 특징도 가지고 있거든요. 마음이 너무 괴로운데, 표현할 길은 없고, 그 불쾌한 에너지가 쌓이다 흘러넘쳐 몸으로 나타나는 것이지요. 전신을 샅샅이 훑어보아도 검사 결과가 정상이니 자신이 현대 의학으로 밝히기 어려운 중병에 걸린 것은 아닌지 걱정되기도 하고, 자신의 고통을 증명할 방법이 없어서 답답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현대 의학으로 쉽게 밝혀내기 어려운 병도 있습니다. 지나영 선생님의 '마음이 흐르는 대로'를 한 번 읽어보세요.) 주변에서 정신과 가보라고 해서 등 떠밀리듯 병원에 왔지만 자신의 병은 여기서 고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맞아요. 충분히 그런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신과 진료실은 '당연히 그런 마음이 들 수 있다'는 것에 공감하고 몸의 고통을 함께 들여다보는 좋은 기회를 줍니다.


  증명할 수 없다고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를 꾀병이라고 함부로 단정 짓고 못났다고 자책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한 번쯤은 몸의 아우성이 사실 마음의 아우성은 아닐지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눠볼 기회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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