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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Jan 19. 2023

정신과 진료실에서 전하는 이야기

9. 귀차니즘의 결과

  작은 대가로 치러낼  있는 일이 나중에 큰일이 되어 오는 것을 종종 봅니다.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꼈을  병원에 오는 것이 꺼려져서 피하고 괜찮아질 것이라 애써 외면하고 실제로 한동안  일이 없어서 잊고 지내기도 합니다. 이럴 때 가장 흔하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병원에 가기 또는 말하기) 귀찮아서’입니다. ‘귀찮다’라는 말의 사전적 정의는 마음의 들지 않고 괴롭거나 성가시다는 뜻입니다. 지금 상태도 썩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걸 누군가와 말하는 것, 그러기 위해 상황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은 더욱 성가시다는 뜻이겠지요.


  귀찮아서 미루면 어떻게 될까요? 시간이 흐른 , 완전히 잊히는 것도 있지만   파도가 되어 덮치는 것도 있습니다. 특히 어떤 상황들은 그저 ‘쌓아두었던 것이 나중에 쓰나미가 되어 당사자를 덮칩니다. 신체와 정신에 관한 대부분의 병에서 ‘치료받지 않은 기간 예후를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요인입니다. 예를 들어 우울증이 오래되면 그 사람의 성격이 되어버립니다. 성격이 되어버린 후에도 치료할 수는 있지만, 먼저 치료하는 것보다 훨씬 오랜 시간과 훨씬 많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드라마에서 종종 등장하는 ‘너무 늦으셨습니다...‘라는 말은 결코 비현실적인 말이 아니지요.


  병만의 일은 아닙니다. 괜찮을 거야, 별일 없을 거야 하며 미뤄둔 청구서들은 나중에 불성실세와 체납세를 배로 붙여서 다가옵니다. 저의 경우 통계가 젬병이었는데 전공의 시절 제대로 공부하는 것이 귀찮아 통계를 외워서 논문을 썼습니다. 다시는 통계를  일이 없을  알았는데 하필 연구가 활발한 병원의 전임의로 취직하는 바람에 그로부터 수년간 통계를 새로 배우고 논문을 쓰는  상상 이상의 시간을 쓰게 됐습니다. 남들이 논문을 후루룩 소화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있을 때 혼자 기초 통계 공부에 집중해야 했고, 스스로가 한심하고 답답한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덕분에 지금의 저는 통계가 그다지 무섭지 않게 되었습니다. 결과를 읽고 논문을 써내는 능력 덕분에 통계를 조금  비판적으로 읽을  있게 되었습니다.


  귀찮아해서 미뤄두고 좋을 일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주 중요한 결정은 시간을 두고 주변의 의견을 구하며 정해야겠지요. 하지만  시간 동안 상황을 외면한다면 나중에 가산세를 치르게 됩니다.

  지금 내가 혹시 외면하고 있는 현실은 없나요? 아직 결정에 시간이 더 필요한가요? 시간이 더 필요할 수 있겠지만 그 시간에도 많은 것이 변하고 있다는 것도 함께 기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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