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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Jan 17. 2023

정신과 진료실에서 전하는 이야기

7. 술을 마시는 이유

  정신과 진료실에서 빠지지 않는 이야기 중 하나에 '술'이 있습니다.

  술 이야기를 할 때 약간 쑥스러운 듯 이야기하는 분도 계시고, 이 정도는 당연히 마시는 것 아니냐며 자랑스럽게 말씀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제 경험에는 전자의 비율이 조금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중에 말씀해 주신 것보다 많이 마시고 있음이 드러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거 아세요? 술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약이자 가장 안전한 약입니다. 안전한 약이란 치사량이 되려면 상당히 많은 술을 마셔야 한다는 뜻이지요.


  그렇다면 술은 어떤 역할을 하는 약일까요?

  술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 수면제, 진정제와 마취제 역할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굳이 이걸 알지 않더라도, 주변에 술을 왜 마시냐고 물어본다면 '잠이 안 와서 맥주 한 캔 마셨어요' '하루종일 곤두서서 일하고 받은 스트레스를 진정시키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마셨어요' '어색한 술자리의 분위기에서 긴장되는 것을 줄이려고 마셨어요' '술을 마시면 아픈 것을 잊게 돼요'와 같은 답을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아냐, 난 그냥 마셔, 맛있잖아' '술은 음식이잖아요, 맛있는 음식의 맛을 돋게 해 줘요' '그냥 매일 마시는 게 습관이 됐어요'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와 같은 답은 어떤 의미일까요? 물론 말 그대로의 의미이기도 하겠지만, 잘 생각해 보면 '맛있는' 이유는 심리적인 것(긴장을 풀어주는 것) 일 수도 있고, 음식 맛을 돋게 하는 것은 일시적으로 미뢰를 마취시키기 때문에 음식이 가진 역한 느낌 (의식적으로는 못 느끼는)을 사라지게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매일 마시는 게 습관이 되었다면, 이미 나는 술이라는 약에 의지하고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술 없이 삶을 살아가는 게 어딘지 어렵다는 뜻일 수 있겠지요. 공사를 통틀어 자주 받는 질문 중 ‘반주는 괜찮잖아요?’가 있습니다. 반주가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는 것은 제 몫이 아닙니다. 하지만 반주가 없다면 식사를 할 수가 없고, 몸이 너무 아파서 술을 마시면 더 아플 것을 알면서도 반주를 마신다면 정말 괜찮은 건지 한 번 고민해 볼 필요가 있겠지요.


  한국에서 술은 매우 싸고 어디서나 구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술을 왜 마시는지 생각해 보기도 전에 술을 마시는 문화에 스며듭니다. 술을 마시는 것은 각자의 선택입니다. (책임감 있게 마시는 선에서 이겠지요.) 다만 내가 왜 술을 마시고 있을까, 술이 나에게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를 한 번쯤 고민해 보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술이 나에게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면, 술'만'이 그 일을 하게 두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술의 화학적 습성들은 누적되어 언젠가 그 역할을 하는데 지장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다양한 대안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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