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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Jan 26. 2023

정신과 진료실에서 전하는 이야기

15. 진통제의 수면 효과

  재미있는 사실 하나 알려드릴까요?

  마음이 아플 때 진통제를 먹으면 마음이 덜 아프다고 합니다.

  진통제는 신체 통증에 관한 내부 호르몬을 조절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동시에 마음의 아픔도 위로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몸과 마음은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진통제를 수면제처럼 쓰시는 분도 많습니다.

  특히 어르신 환자분들 중에는 진통제를 먹어야 주무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수면제를 여러 종류 바꿔서 드려보아도 결국은 진통제를 꼭 드셔야 그 밤이 끝납니다. 이것 때문에 가족과 실랑이하고 약을 숨겨서 몰래 드시는 등 웃지 못할 일들이 진료실에서 벌어진답니다. 왜 진통제를 먹으면 잠이 올까? 저 나름의 가설을 세워보았습니다.

  첫째,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는 신체의 불편감을 진통제가 누그러뜨리면서 긴장이 풀어지고 잠이 온다.

  둘째, 진통제 고유의 성분이 수면을 유발한다. 진통제를 먹으면 몸이 가라앉는 분이 계십니다. 진통제마다 비슷하지만 다른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자는 약에 대해 고유한 반응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진통제를 먹으면 졸릴 수 있습니다.

  셋째, 진통제를 수면제라고 믿는 효과 때문이다. 제 진료실에 오시는 할머님 한 분은 진통제를 철석같이 ‘수면제’라고 믿고 계십니다. 상자에 아무리 진통제라고 쓰여있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주 단호한 표정으로 ‘이건 수면제야. 난 이걸 못 먹으면 잠을 절대 못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분을 뵐 때마다 이토록 믿음의 힘이 강력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어디서 어떻게 형성된 믿음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 믿음이 할머니를 잠들 수 있게 만드는 것인 것 같습니다. 왜냐면 다른 진통제로는 잠을 전혀 못 주무시거든요.


 확실한 것은 누군가에게는 진통제가 그 어떤 약보다 좋은 수면제라는 것입니다. 이를 먼저 인정해야 대화가 시작됩니다. 그러니 비슷한 고민이 있으시다면 ‘진통제가 수면제냐’하며 못 먹게 하고 싸우기보다, ‘왜 당신에게는 이게 수면제일까?’를 궁금해하며 대화를 나눠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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