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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Jan 27. 2023

정신과 진료실에서 전하는 이야기

16. 명절에 이혼하는 이유

  며칠 전 꽤나 도발적인 기사가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집을 사주신 시부모님이 갑자기 명절에 1박 2일 자고 간다고 했더니 아내가 소리를 질러서 이혼을 고민하고 있다는 블라인드의 글과 댓글이 기사가 되었죠. (기사 출처: https://n.news.naver.com/article/421/0006591630?sid=102)

  글 자체의 내용뿐 아니라 댓글의 반응이 더 흥미롭습니다. 남편 입장에서 쓴 댓글, 아내 입장에서 쓴 댓글, 최대한 중립을 지키려 애쓴 댓글, 판단을 유보하는 댓글 등 각자의 입장에서 댓글이 달렸습니다. 제 남편도 이 기사를 읽고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거야?'라고 물었습니다. 저의 경우는 시부모님의 간섭이 거의 없는 상황이므로 하루 자고 가는 것쯤이야 별 문제가 안 되지만 갑자기 오신다면 아무래도 집 청소나 식사 준비 등에서 신경이 쓰일 것 같았습니다. 당장 깔아드릴 이불도 없는데 이불은 어디서 사지,부터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매 명절이 지나면 심심치 않게 '명절 증후군' '명절 후 이혼이 늘어' 등과 같은 기사가 눈에 띕니다. 이런 기사가 단골 등장한다는 것은 그 기사의 소비량이 많다는 것이고, 자극적인 제목에 눈길이 가서 클릭하는 경우도 있지만 '나도 그런 고민이 들었어'라는 사람들의 마음을 반영하고 있기도 할 것입니다.

  왜 명절에 이혼한다는 이야기가 많이 등장할까요? 명절은 기폭제일 뿐 명절에 벌어진 일만이 원인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평소 시가나 처가와 맺어온 관계와 갈등, 명절이라는 이벤트를 두고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알게 모르게 마찰이 있었을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파생된 감정은 쉽게 꺼내기 어려운 것이라는 점입니다. 남편의 원가족, 아내의 원가족은 남편, 아내와 별개의 존재이면서 남편, 아내를 지금까지 길러온 배경입니다. 그러다 보니 원가족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이야기했는데 듣는 이는 마치 자신을 대놓고 비난하는 것처럼 느끼는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용기 내서 했던 이야기에 서로 점점 예민해지고 나중에는 입을 다물어버립니다. 오해와 분노가 해소되지 않은 채 엉뚱한 곳에 쌓여 마지막에는 폭발합니다. 상대방은 '대체 왜 그렇게까지?'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게 말입니다.


  명절에 이혼하는 이유는 '당신의 가족에 관한 이야기가 너무 은밀해서 하기 어려운' 우리의 마음과 사회의 분위기가 아닐까요? 불만을 가지는 사람은 상대방 자신과 상대방의 가족을 분리해서, 객관적인 사실로 어려움을 표현하고, 불만을 듣는 사람은 자신과 가족을 분리해서 듣는 귀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또한 이런 이야기를 조금 더 자유롭게 꺼낼 수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도 함께 형성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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