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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Jan 25. 2023

정신과 진료실에서 전하는 이야기

14. 파묻힌 별

  오래된 병은 성격을 바꿉니다. 우울증이 오래되면 자신감 없고 움츠러드는 모습이 원래 그 사람의 성격인 양 변합니다. 마치 원래부터 성격이 우울하고 부정적이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알코올 의존이 오래되면 성마르고 매사에 술을 찾고 변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모습이 원래 그 사람의 성격인 양 변합니다. 마치 처음부터 어차피 난 바뀌지 않아, 그냥 이렇게 살 거야 고집 피우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요, 오래된 병이 성격을 바꿀 수는 있지만 그 사람의 본질까지 바꿀 수는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고유의 장점과 강점을 타고납니다. 아무리 재능이 없어 보이는 사람도 잘하는 일 한 가지는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의 유전자가 그렇게 되어있거든요. 그것이 성격과 병에 파묻혀 보이지 않은 지 아주 오래되었더라도,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파묻힌 별입니다.


  얼마  진료실에서 있었던 이야기. 평소 수줍고  맞춤도 어려우며 타인에 대한 미움으로 가득한 분이 오셨습니다. 여느 때와 비슷한 모습이었는데 지난주에 혼자서 해외에 다녀오셨다고 하시더라고요. 해외요? 평소 말수도 별로 없고 대인관계에도 오랜 어려움이 있던 분이어서 해외여행을 자발적으로, 혼자서 다녀오실  있으시리라곤 생각도  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아 불안하지 않았느냐 묻자 어차피  같은 사람인데요,라고 편안하게 대답하시더라고요. 그분이 손짓발짓하며 음식을 주문하고 외국 거리 한복판을 자유롭게 산책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편안하게 외국으로 다녀오게 하는 ‘ 무엇일까, 너무 궁금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별’을 찾는데 진료시간을 더 많이 써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얼마나 깊게 파묻혀있는지는 겉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심지어 별의 반짝이는 속성은 대개 두꺼운 돌덩이 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돌덩이를 찾아내고 깨 봐야 합니다. 때로는 속이 빈 돌덩이를 찾아서 허탈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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