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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Jan 23. 2023

정신과 진료실에서 전하는 이야기

12. 아주 작은 이 닦기의 힘

  자기 계발서적이 유행하는 계절입니다.

  노오란색 표지에 검은 글씨로 보는 이의 눈을 강력하게 끄는 ‘아주 작은 습관의 힘(Atomic habit)’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오늘은 이 책 제목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 입자만큼 작은 습관에 대해 이야기해 볼게요.


  어떤 종류의 병에 걸리던, 병은 우리의 일상을 변화시킵니다. 우울증이 오면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고, 밤에는 잠들기가 힘들며, 입맛이 없거나 갑자기 폭식을 하게 되지요. 조현병 증상을 경험하면 일상적인 자극이 너무 강렬해서 피하게 되고,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해서 외출을 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공황 증상이 나타나면 출퇴근할 때 꼭 타야 하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는 게 갑자기 어려워지거나 터널을 지나가는 것이 무서워서 우회로를 선택하게 됩니다. 알코올 의존 증상이 나타나면 식음을 전폐하고 음주에 몰두하며 그로 인해 일상생활이 유지되지 않지요.


  그래서 어떤 종류의 병에서든 회복하는 방법은 기본적인 루틴의 회복입니다.

  입원 중이던 한 환자분의 이야기. 음주 문제로 20년 이상 고생하고 어렵게 입원을 했습니다. 입원해서 술만 마시지 않았지 침대에서 거의 나오지 않고 멍하게 스마트폰만 보거나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병동에는 기상시간부터 식사시간, 프로그램시간과 같은 시간 규칙이 있습니다. 또한 병동은 여럿이 어울려 지내는 곳이기 때문에 단체생활의 규칙을 지켜야 하지요. 하도 씻지도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내니 이를 보다 못한 수간호사 선생님께서 한마디를 하셨습니다. 약간의 실랑이 끝에 ‘알았어요, 그럼 하루 세 번 이는 닦을게요’로 이야기가 마무리됐습니다.

  하루 세 번 이를 닦으면서 환자분은 서서히 변했습니다. 이를 닦으러 나오니 오가며 직원이나 다른 환자분들을 마주하게 되고, 괜히 한 마디 더 하게 되고 친해지기도 하고, 이를 닦고 나니 깎지 않은 수염이 너무 덥수룩해 수염도 깎았습니다. 수염을 깎고 나니 이발도 하고, 이발을 하니 머리도 감으며, 머리 감으니 목욕도 하게 되지요. 목욕하고 나면 개운해져서 옷도 갈아입고 침대보도 갈게 됩니다. 몸을 움직이니 배가 고파서 밥도 잘 먹고, 주변에서 깔끔해졌다고 칭찬도 받지요. 칭찬에 으쓱해진 환자분은 조금씩 주변을 돕고 프로그램 시간에 발표도 늘었답니다. 그 결과 일을 구하고 퇴원을 했고 술을 마시지 않으며 외래에 다니고 계십니다.


  이 분이 여기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 환자분의 장점은 본인의 약속을 계속해서 지킨 것, 서서히 변화할 수 있는 동안 스스로 입원을 지속한 것입니다. 정해져 있는 규칙도 지키기 어려운데, 스스로와의 규칙은 얼마나 지키기가 어렵겠어요. 그래도 이 분은 해내셨습니다. 아주 작은 이 닦기의 힘. 별것 아닌 것 같은 일상의 규칙을 꾸준히 지키는 것은 우리의 삶의 강력한 드라이브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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