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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Feb 11. 2023

정신과 진료실에서 전하는 이야기

29. 가족이 아픈 이들에게: 가족에게도 숨 쉴 구멍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내가 아프면 주변에 잘 말하는 편이신가요? 가족이 아프면 어떠신가요? 만약 내 가족이 정신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다면 어떻게 하실 것 같으세요? 많은 사람들이 입 꼭 다물고 ‘집안의 비밀’로 꽁꽁 숨겨두려 할 것입니다.


  가족은 당사자의 고통을 경감시켜 주고자 많은 것을 감내하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없는 것처럼 감춰둔 상처는 통풍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치료받지 않으면 속으로 곪아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는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가족에게도 ‘통풍할 구석’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아무 데서나 상처를 드러내라는 뜻이 아닙니다. 상처를 드러내도 괜찮을 사람들과 공간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지요. 환자는 진료실에서 숨 쉴 구멍을 찾습니다. 가족은 어디로 가면 될까요?


  많은 질환에는 ‘가족 치료 모임’이 있습니다. 이런 모임에 가면 가족이 앓고 있는 병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배울 수 있을 뿐 아니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가족 모임은 ‘이런 아픔을 나만 겪고 있는 게 아니었어’ ‘나아질 수 있는 희망이 있어’라는 메시지를 주고, 가족이 숨 쉴 틈을 마련해 줍니다. 중독 질환의 가족 모임으로는 ‘알라논(Al-anon)’(http://www.alanonkorea.or.kr/)과 중독자의 미성년자 자녀를 위한 ‘알라틴(Ala-teen)’이 있고, 조현병의 가족 교육인 ‘패밀리 링크’(http://www.familylink.or.kr/)가 대표적입니다. 이 외에도 각 기관(병원이나 협회)이나 지자체마다 별도로 운영하는 가족 치료 프로그램이 있을 수 있습니다. (검색창에 ‘정신건강복지센터’ 또는 ‘중독관리지원통합센터’를 찾으면 지역의 센터가 나옵니다) 특히 중독과 조현병은 만성화되며 본인과 가족에게 질병 부담을 가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이런 도움이 필요합니다.


  진료실에서 가족 교육이나 치료 프로그램을 안내하면 가장 많이 돌아오는 대답이 ‘가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해요’입니다. 주변이 알게 될까 노심초사하며 속으로 썩힌 상처에 고름이 차고 있어서 환자에게나 가족에게나 좋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그러한 어려움을 불사하고 꼭 가야 한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립니다. 빈대 잡자고 (사람들이 알게 될까 봐 두려워서) 초가삼간 다 태우는 (병으로 온 가족이 모두 고생하고 지치는 것) 셈이지요.


  용기가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겉으로는 문제없이 잘 사는 것 같아도, 나름의 고통이 하나씩은 있게 마련입니다. 가족 모임에 한 번도 안 간 사람은 있지만, 한 번만 가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한 번 그 강력한 치유력을 맛보고 나면 기꺼이 찾아서 가게 됩니다. 처음이 어려워요. 하지만 가족이 살아야 당사자도 살 수 있습니다. 숨 쉴 구멍을 찾는 마음으로, 꼭 한 번 찾아가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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