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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Feb 10. 2023

정신과 진료실에서 전하는 이야기

28. 부모와 자식 사이 (1) 엄마와 딸 사이

  제가 생각할 때,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를 이해하는 키워드는 ‘모순’과 ‘통제’입니다.


  엄마는 딸에게 두 가지 모순된 마음을 동시에 품습니다. 이 아이도 나와 같겠구나, 그리고 이 아이는 나처럼 자라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을 품지요. 엄마는 딸이 적어도 자신과 같은 고통을 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근대의 한국 어머니들은 ‘여자’ 또는 ‘엄마’라는 미명 아래 희생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교육의 기회는 아들에게 양보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고, 가정의 밑천으로 일찌감치 산업전선에 뛰어드는 것이 당연하고, 시부모님을 모시는 것이 당연하고, 아들을 낳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 삶을 살았습니다. 근대의 어머니 밑에서 자란 딸들은 더 좋은 교육을 받을 기회를 얻었지만, 동시에 이러한 자원을 충분히 활용하기는 어려운 문화적 조건에서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엄마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메시지 (‘공부 열심히 하렴, 하지만 공부로 자수성가를 하라는 게 아니야, 적당히 괜찮은 사람 만나서 시집 잘 가라’와 같은 메시지)를 보내야만 했고, 딸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런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이 나와 똑 닮은 엄마라는 것이 혼란스러움을 가중시켰을테지요.


  엄마와 딸은 동성이기 때문에 서로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여 동일시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엄마가 생각하는 대로 딸이 행동하거나 생각하지 않으면 그 차이를 인정하기가 아들에게 그러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것 같습니다. 배신감도 훨씬 크게 느끼는 것 같고요. 또한 이러한 엄마의 모습은 딸의 무의식에도 각인되어 딸 역시 엄마와 자신의 차이를 인정하기 어려워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고되게 사는 엄마를 보면 딸들이 화를 많이 내는 이유도, 나 역시 저렇게 살게 되지 않을까에 대한 무의식적인 걱정과 두려움 때문이지 않을까요?

  신기하게도, 같은 동성끼리라고 해도 아빠와 아들 사이는 이와 많이 다릅니다. 여자라는 생물학적 성별이 지닌 관계에 대한 감수성은 모녀 간의 얽히고설킨 감정의 타래를 만드는 아교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엄마와 딸은 서로 ‘마치 한 몸인 것처럼’ 통제하고 싶어 하고, 그러면서 함께 소화하기 어려운 모순되는 메시지를 주고받는 아주 복잡한 관계입니다. 이 관계가 오죽 복잡하면 관련된 책도 정말 많이 출간되고 반응도 좋을까요. 엄마와 나, 나와 딸의 관계를 단박에 정의 내리려 하기보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서로 통제하고 싶어 하는구나, 이런 점에서 서로 모순된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구나, 하는 부분을 찬찬히 살펴보시며 관계의 특이점을 찾아보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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