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루마루 Mar 09. 2023

정신과 진료실에서 전하는 이야기

50. 현실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에 대해서

  여러분은 삶이 어떨 것이라 기대하고 계신가요?


  학창 시절 가장 많이 듣던 말은 ‘대학만 가면’입니다. 대학에 갔더니 ‘학교만 졸업하면’이라고 하고, 학교를 졸업했더니 ‘취직만 하면’이라고 하고, 취직을 했더니 ‘결혼만 하면’이라고 하고, 결혼을 했더니 ‘애만 낳으면’이라고 하고, 애를 낳았더니 ‘하나를 더 낳아야 진짜’라고 합니다. 둘째까지 낳으면요? ‘애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취직하면’이 끝없이 이어질 것이라 예상이 되지요?


  부끄럽지만 저는 정말로 저 말을 믿었습니다. 대학만 가면 다 예뻐지는 줄 알고, 남자친구도 자동으로 생기는 줄 알았어요 (웃음). 지금 돌이켜보면 참 단순한 생각입니다. 대학에 가서 예뻐지기 위해 노력해야 예뻐지는 것이고, 여러 사람을 만나고 나와 잘 어울리는 좋은 사람을 찾아내는 안목이 있어야 괜찮은 남자친구도 생기는 것인데 말입니다. 미래는 중요합니다. 미래를 위해 지금 노력하고 기꺼이 포기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가진 것 안에서도 행복을 찾고 만족을 누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정신과 전공의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답니다. 그것도 진료실에서 만나는 많은 환자분들을 통해서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무언가가 결핍되어 있어서 불행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삶에 필수적인 것이 부족해서 불행할 수도 있습니다. 거처가 불안정하거나,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한다면 행복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애인이 없어서, 취직을 못해서, 결혼할 수 없어서, 아이가 없어서 지금 불행한 것이니, 이 문제를 해결하면 행복이 '자동으로' 찾아온다고 믿는 것은 ‘현실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입니다.


  때로는 특정 물건을 소유하지 않아서 불행하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현대의 마케팅은 ‘이것을 가지면 넌 완벽해져’와 같은 메시지를 전합니다. 즉, 너는 이게 없어서 지금 완벽하지 않고 불행한 것이니 이것을 사고 행복을 찾으라고 말합니다. 쇼핑을 하면 그 순간 (적어도 카드를 긁는 순간)은 매우 만족스럽지만, 막상 집에 들고 와 보면 ‘굳이 이게 필요했나’ 스스로에게 되묻고 후회하기도 합니다. 내가 그 물건을 샀다고 모델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때 ‘아, 이것도 없어서 그래!’하면서 다른 쇼핑으로 그 공허함을 메꾸려고 하다 보면 끝이 없습니다.


  현실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채워질 것’이라는 신기루를 믿게 하고 연기처럼 사라질 것들에 집착하게 합니다. 혹시 나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채워야만 행복하다' '결핍이 없어야만 행복하다'라고 느끼고 있지는 않은가요? 결핍은 삶의 원동력이고, 결핍으로 인해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정신과 진료실에서 전하는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