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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Mar 10. 2023

정신과 진료실에서 전하는 이야기

51. 나와 남, 남과 나 사이

'남'의 사전적 정의는 '자기 이외의 다른 사람'입니다. 즉, 물리적으로 '나'의 경계 밖에 있는 사람은 모두 '남'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을 그리 이상하지 않게 받아들이는 한국 문화에서는 나와 남을 구분하는 것을 오히려 이상하게 여길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남'이라는 말의 두 번째 사전적 정의는 '일가가 아닌 사람'이고, 세 번째 사전적 정의는 '아무런 관계가 없거나 관계를 끊은 사람'입니다. 물론 '우리가 남이가'를 '우리가 아무런 관계가 없거나 관계를 끊은 사람이냐'라고 해석한다면 이해가 되지만, 제가 느끼기엔 '우리는 한 몸과도 같은 사이'라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훨씬 많았습니다. 네 것이 내 것이고, 내 것이 네 것이며, 네가 느끼는 것처럼 나도 느껴야 하고, 내가 느끼는 것처럼 너도 느껴야 하며, 내가 너에게 준 만큼 너도 나에게 줘야 한다고 강요당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와 남은 엄연히 다른 사람입니다. 우리는 타고난 것도 다르고 같은 상황을 느끼고 경험하는 것도 모두 다릅니다. 인류의 보편적인 감정과 생각은 존재하지만, 모두가 동일하게 느낄 수는 없습니다. 각자 자신만의 뉘앙스와 분위기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단결' '다 같이 으쌰으쌰' 문화는 힘들 때 서로 돕고 즐거움을 함께 느끼며 배가한다는 장점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그리 슬프지 않거나 즐겁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이러한 개인의 감정을 배제하거나 무시한다는 무서운 단점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이 양날의 검처럼 느껴집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심지어 피를 나눈 부모자식, 형제지간이어도 나와는 분명히 다른 존재입니다. 진료실에서는 '나와 남'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으로 혼란스럽고 고통을 받는 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자식과 부모에 대한 한탄, 한 몸인 것처럼 간이며 쓸개며 모두 내어준 사람의 배신으로 인한 억울함, '내가 이만큼 해줬으니 당연히 이만큼 돌려줄 것이라 기대한' 상대방이 내 기대에 못 미치게 행동할 때의 분노. 모두 '우리가 남이가'의 피해자입니다.


  '우리가 남'이라는 말이 차갑게 느껴지시나요? 우리 정서상 그렇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진실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한 몸이지 않을뿐더러, 우리는 서로 다른 생각과 감정을 지닌 독립적인 개체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가까운 사이일수록 '우리가 남'이라는 것을 더 많이 기억해 주세요. 우리가 남이라는 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서로를 더 따뜻하게 배려하고 각자의 독립성을 존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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