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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건우 Jul 28. 2023

H마트에서 울다

H마트에서 울다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엄마에게서 태어난 미셸은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곧바로 미국으로 가서, 한국어를 거의 배우지 못한 채 성장한다. 한국인 엄마는 미셸을 '한국어 학교'에 등록해 한국어를 읽고, 쓸 수 있도록 가르쳤지만 완전하지 않았고, 엄마와 함께 한국을 방문해 그의 이모들과 엄마가 반갑게 어울리는 장면을 기억하지만, 한국어를 거의 할 줄 몰라서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주고 받았는지 모른 채 자랐다.

미셸은 한국사람이 살지 않는 외진 마을에서 살았으며, 학교에서도 유일한 한국인 혼혈이었다. 그는 다른 수많은 혼혈아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했고, 부모와 불화하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미셸은 미국에서 자라지만, 한국인 엄마를 둔 딸로, 마치 한국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엄마와 딸'의 관계를 보인다. 미셸은 자기 엄마와 다른 미국인 엄마가 많이 다르다는 건 알지만, 엄마의 말과 행동이 철저하게 한국의 정서를 담고 있다는 건 눈치 채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

미셸은 대학 진학을 하지 않고 좋아하는 음악을 할 생각이었지만, 엄마는 반드시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고 강요하고, 강제해서 미셸은 대학에 진학하고, 그렇게 부모와 집으로부터 독립한다. 

미셸은 어릴 때부터 엄마의 잔소리, 간섭, 신경질이 불편하고 피곤하고 싫었지만, 한편으로 엄마는 자기를 가장 잘 알고, 누구보다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미셸이 청소년 시기를 거치며 정체성으로 심각하게 고민할 때 엄마는 큰 도움이 되어주지 못했지만, 엄마와 함께 한국식품을 파는 H마트에서 쇼핑하고, 그곳 푸드코트에서 한국 음식을 사 먹고, 엄마가 골라준 예쁜 드레스를 입고, 나중에 알게 되지만 엄마가 알게 모르게 자기를 찍은 많은 사진을 보며, 엄마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진했는 지 새삼 깨닫는다.


집을 떠나 부모와 거리를 두면서 미셸은 비로소 엄마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고, 엄마를 조금 더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건 미셸이 청소년기의 혼란을 극복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렇게 엄마를 이해하기 시작할 때, 엄마가 암에 걸리고, 상황은 심각하게 바뀐다. 엄마의 동생, 막내 이모도 암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미셸은 영어를 잘 하는 막내 이모와 한국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낸 경험이 있었다.

미셸이 엄마의 형제는 모두 세 명으로, 엄마는 둘째였다. 막내 이모가 유일하게 대학을 나왔고,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해서, 미셸과 엄마가 한국으로 휴가를 나올 때면 막내 이모집에서 먹고, 자고, 함께 여행하며 더없이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 추억이 있었다.

하지만 막내 이모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미셸의 엄마가 암 진단을 받는다. 미셸은 이 상황이 믿기지 않고, 믿고 싶지도 않았지만, 집으로 돌아가 엄마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엄마를 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엄마에게 '한국 음식'을 만들어 드리는 것이고, 미셸은 엄마가 만들어 주었던 많은 한국 음식을 떠올리며 한국 음식을 만들어 보려 한다.

하지만 상황은 더 나빠지고, 미셸과 아빠만으로는 엄마를 간병할 수 없어, 엄마와 친한 한국 아주머니들이 번갈아가며 집에서 함께 생활하며 음식을 만들고, 엄마를 돌본다. 미셸은 이 모든 과정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희망을 잃지 않으려 한다. 엄마의 마지막 소원은 한국 여행을 하는 것이어서, 가족은 한국에 도착하지만, 곧바로 미셸의 엄마 상태가 나빠져 병원에 입원하고, 결국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미셸은 엄마가 암으로 죽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기에, 여전히 젊은 - 50대 후반 - 엄마가 그렇게 갑작스럽게 죽게 되자 충격을 크게 받는다. 마음이 준비도 하지 못했고, 이제서야 엄마를 이해하기 시작했는데, 엄마는 영영 사라져 버리고, 다시는 볼 수도, 이야기를 나눌 수도, 만져볼 수도 없게 되었다. 그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고, 아픔이었다.

미셸이 엄마를 기억하는 방식은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는 거였다. 엄마가 만들었던 수 많은 한국 음식들을 기억하며, 자기가 직접 하나씩 음식 만들기에 도전한다. 미셸은 엄마가 죽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식을 올리는데, 엄마에게 조금이라도 희망과 기쁨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엄마가 죽고, 미셸 부부는 마지막 남은 이모를 만나러 한국으로 간다. 이모는 영어를 못 했고, 미셸은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전달하지 못하지만, 이모가 죽은 엄마와 똑같은 마음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엄마가 죽고, 한동안 그 아픔으로 시간을 보낸 미셸은 생활인으로 돌아가 회사에 취직해 돈을 벌기 시작한다. 그는 그동안 한번도 제대로 된 직장 생활을 한 적이 없었고, 오로지 음악을 잘 하고 싶었고, 그들이 함께 하는 밴드 활동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음악 활동은 성과를 내지 못했고, 엄마는 미셸이 음악가가 되는 걸 반대했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 음악을 하는 예술가는 배고픈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게 엄마 생각이었고, 자기의 딸이 그렇게 고생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밴드 활동을 하고 약 8년이 지났어도 이렇다 할 결과를 만들지 못한 상태였는데, 엄마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뜻밖에 예전에 냈던 음반이 팔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미셸의 밴드는 명성을 얻으며 미국 투어는 물론 유럽, 아시아 투어까지 하게 되고, 미셸이 쓴 글이 유명 잡지와 뉴욕타임즈에 실리면서 미셸은 음악과 글 모두에서 성공한다.

이 성공의 바탕에는 죽은 엄마의 이야기가 소재였다는 게 아이러니하고,  모든 걸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었지만, 엄마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 미셸은 그리움과 안타까움과 슬픔과 외로움으로 엄마를 추억한다. 미셸은 유튜브 동영상을 보며 한국 음식, 특히 김치를 만들기 시작하고, 자신의 정체성이 '한국인'이라는 걸 뚜렷이 인식하며, 그걸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한때 자기의 정체성을 고민하던 미셸이었지만, 이제는 엄마의 피가 한국인이라는 걸 감사한다. 모든 것이 '한국인'의 삶의 방식 그대로였던 엄마에게서 다른 엄마들과는 다르게 삶의 태도를 배웠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한국인'의 삶의 방식이 얼마나 괜찮은 건지를 깨달으며 미셸은 엄마의 깊은 사랑을 간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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