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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건우 Mar 31. 2024

댓글 전쟁

댓글 전쟁


장강면 작가의 소설 [댓글전쟁]을 원작으로 한 영화. 영화를 보기 전,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를 만든 감독이라는 걸 알고, 별 망설임 없이 예매했다. 감독의 장편 영화 데뷔작인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흥행은 크게 성공하지 못했으나, 작품의 수준은 확실히 인정 받았다.

특히 연출 기법에서, 영화를 조금 본다는 사람이라면 단번에 이 영화의 개성과 특징을 알아챌 걸로 안다. 나 역시 아무런 정보 없이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를 보면서, 이 영화에서 박찬욱 감독의 향기가 진하게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박찬욱 감독과 함께 일했던 조감독의 작품이었고, 연출 스타일이 박찬욱 감독을 빼닮았다. 그게 장점이면서 단점으로 작용할텐데, 이번 영화 '댓글 전쟁'에서는 전작에서 느꼈던 박찬욱 스타일이 거의 사라졌다.


소설이 '팩션(faction)'이어서 독자나 관객은 작품을 읽거나 보면서 끝까지 긴가민가 의구심을 갖는다. 이런 방식은 소설 기법의 하나로, 유명한 작품으로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푸코의 진자'를 들 수 있다. '팩션'은 대부분 '음모론'을 끌고 오는데, 음모론은 완전히 거짓말을 말하지 않고, 사실과 거짓을 적당하게 섞었다는 점에서, 이 영화에서 말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영화는 시작하면서 '이 내용은 모두 실화'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그 근거를 보이는데,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촛불집회'의 최초 시작을 1992년, 컴퓨터 통신을 하던 한 소년으로 지목한다. 그리고 '하이패스'와 관련한 실제 사건을 다루고, 이 사건을 기사로 쓴 기자가 회사에서 쫓겨난 현재를 보여준다.

'하이패스' 사건은 꽤 오래 전 발생한 사건으로, 국내 최대 기업과 중소기업의 경쟁 과정에서 대기업의 불법 행위가 나중에 드러났다. 이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고, 기억한다 해도 40대 이상의 장년층이 대부분일 걸로 안다.


영화의 흐름은 대기업의 횡포를 취재해 기사로 쓴 한 기자의 시각으로 보여준다. '기레기' 소리를 듣는 기자로, 지금 한국 언론의 썩은 부분과 그 와중에서도 사실을 밝히려는 기자가 있다는 걸 보여준다. 언론사 간부들이 대기업의 홍보실로 이직하는 건 더러운 뒷거래가 있을 거라고 추측하게 한다.

대기업에서 '댓글부대'를 비밀로 운영하고 있다는 루머는 꽤 오래된 떡밥이다. 영화에서는 대기업 하나만 나오지만, 한국사회에서 댓글부대는 정부기관의 하나인 정보기관에서도 운영한 걸로 밝혀졌고, 댓글부대에서 활동했던 요원이 재판정에 나와 증언하기도 했다.

따라서 '댓글부대'의 존재가 허구는 아니다. 어디에선가 '댓글부대'를 운용하고 있을 거라는 추론은 터무니 없고, 황당한 주장이라고 반박하기 어렵다. '댓글부대'는 정치 분야에서 적대적 관계에 있는 집단이거나, 대기업에서 비공식으로 운영할 가능성이 높다.

'댓글부대'를 상설로 운영하지 않더라도, 지금처럼 중요한 선거 국면에서 경쟁 상대에게 나쁜 여론을 만들고, 적을 공격해 심각한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여론 조작의 필요성을 갖는다면 '댓글부대'를 일시적으로 운영하고픈 강한 욕망을 느낄 것이다.


음모론처럼 보이는 세계적인 이슈는 유태인이 금융자본을 장악하고, 유태인들이 유럽과 미국의 금융, 국방, 영화 산업을 장악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여론을 조작한다는 내용이다. 이런 음모론을 잘 정리한 사람이 일본의 저널리스트 히로세 다카시인데, 그는 '제1권력', '금융부패 주모자들' 같은 책을 통해 유태인들이 중세 이후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에서 어떻게 부와 권력을 장악했는가를 추적해서 보여준다.

한국사회에서 '댓글부대'의 존재는 여론을 조작하려는 집단에 의해 구성되며,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대중을 기만한다는 점에서 범죄다. 우리 사회는 이런 거짓 정보를 퍼뜨리는 행위를 가볍게 처벌하는 게 오히려 문제다. 가짜 뉴스, 조작, 유언비어, 사기 등과 같은 거짓 정보를 생산, 유포하는 범죄가 사회의 신뢰성을 무너뜨리고, 개인들 사이에 불신과 경계의 갈등을 부추겨 사회비용이 커지는 부작용을 만든다.


언론은 물론, 기업, 정부기관에서 가짜 뉴스를 생산, 유포하는 사실이 드러나면 살인죄 이상의 처벌을 적용하는 게 필요하다. 개인도 다른 사람을 악의적으로 모함하거나 다른 사람의 명예와 이미지를 훼손하는 가짜 정보를 퍼뜨릴 때, '인격살인'으로 판단해 살인에 준하는 처벌을 해야 한다.

가짜 뉴스가 퍼지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내부에서 붕괴한다. 가짜 뉴스를 생산하는 집단이 존재하고, 그런 집단을 운용하거나, 그로 인해 이익을 보는 개인, 기업, 정부기관 등이 있다면, 그건 '반국가행위'에 해당하는 죄로 처벌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내부고발자에 대한 혜택과 보호를 더욱 적극 강화할 필요가 있다. 내부고발자가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경제적, 사회적 보호를 제도화 하고, 금전적 이익도 보장해야 한다. 투명하고 깨끗한 정보가 흐르도록 하는 건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의무다. 

영화는 대기업과 기자의 취재 사실을 두고 진실이 무엇인가를 음모론으로 다루고 있다. 다큐멘터리는 아니지만, 우리 사회의 심각한 '가짜 뉴스'를 팩션 형태로 보여주는데, 현실에서는 이보다 훨씬 심각한 '댓글부대'가 활동하고 있고, 그들이 지금도 어디에선가 쥐새끼처럼 사회를 갉아 먹고 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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