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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by 백건우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김기영 감독 작품. 한국영화에서 독특한 작품을 만드는 김기영 감독이 1978년에 만든 영화로, 시간이 지나서 새로운 평가를 하게 되는 영화다. 김기영 감독의 영화는 개봉할 당시에는 올바른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의 작품은 시간이 지나 영화 미학, 철학적으로 다시 평가받으면서 알려진 그의 작품 가운데 '하녀'나 '충녀'는 걸작으로 알려졌다.김기영의 작품은 서른 작품이 넘지만, 대부분 필름이 사라져 복원하지 못했고, 여덟 편 정도를 현재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김기영의 작품은 다른 수많은 평범한 극영화와 다른 느낌이다. 낯설고 거칠지만 독특하다. 그의 영화를 두고 '아방가르드', '수퍼레알리즘(초현실주의)', '탐미주의' 등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김기영의 영화를 보면 자연스럽게 루이스 부뉴엘의 작품이 떠오른다. '안달루시아의 개'에서 첫 장면이 주는 충격적 장면과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루이스 부뉴엘의 연출은 김기영에게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욕망'과 '환상'은 김기영 작품의 중요한 모티프가 된다. 이때 '환상'은 카프카의 '환상'과 개념에서 매우 비슷하다. 김기영의 작품에서 주인공들이 보고, 듣고, 느끼는 환상은 모두 '욕망'에서 나오는 일종의 현현이다. 개인의 욕망이 봉쇄당하거나, 욕망이 억압당하거나, 욕망을 분출하지 못하는 상황일 때, 개인은 그 '욕망'을 온전히 내면에서 억눌러 잠재우지 못 한다. 이건 명백히 프로이트 이론을 영상으로 풀어 드러내는 걸로 보인다.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에서 두 명의 여성이 죽는데, 영화 처음과 마지막에 각각 여성이 죽고, 그 죽음의 원인은 우연하게도 '암'이다. 그 사이에 무수히 많은 사람이 살해되는데, 연쇄 살인의 배경에는 '고인류학'이 매개로 작용한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어설픈 설계와 전개로 사실성이 떨어지지만, 영화를 조금 다르게 해석하면 이 비현실적 상황이 곧 영화의 장점이 된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주제로 이어지는 서사물이 아니라 네 개의 다른 이야기를 주인공 영걸을 통해 경험하도록 만들고, 그 경험이 초현실적인 환상과 현실로 뒤섞이면서 영화는 판타지와 초현실, 현재가 혼재하는 형식으로 드러난다.


주인공 영걸은 대학생이다. 영걸은 서울 변두리 산동네에 혼자 산다. 그의 존재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몹시 가난해 날마다 라면을 끓여 먹는데, 그는 대학생이다. 1970년대 중후반에 대학을 다닐 정도라면 머리도 좋아야 하지만 어느 정도 먹고 사는 집안이어야 한다. 물론 영걸이 전액장학금을 받으며 학교에 다닌다고 설정할 수 있다. 영걸의 존재는 많은 부분 비현실적이라는 점에서 '추상적 존재'로 그려진다. 영걸이 겪는 사건들 또한 '구체적 사건'이라기보다는 '상징적 사건' 또는 '추상적, 관념적 체험'을 통해 개인의 욕망과 시대의 불화를 드러내려는 감독의 의도를 볼 수 있다.

영걸과 친구들이 나들이한 곳에서 우연히 어떤 여성을 만난다. 그 여성은 영걸을 유혹하고, 음료수를 함께 마시자고 말하고, 영걸은 별 의심 없이 음료수를 받아 마시는데, 낯선 여성은 음료수에 독이 들었다고 말하며 죽는다. 갑작스럽고 충격적 상황이 벌어지고, 영걸도 죽기 직전까지 갔다 겨우 살아난다. 낯선 여성은 나비 목걸이를 하고 있었는데, 경찰이 부검한 결과 독극물에 의한 자살로 결론이 나고, 경찰은 영걸에게 죽은 여성이 걸고 있던 나비 목걸이를 걸고 다니라고 말한다. 여기서, 독극물을 먹은 여성에게도 가족은 보이지 않는다.

영걸이 모르는 여성을 만나 그가 건넨 독이 든 음료를 마시고 죽다 살아났다. 그리고 이후 영걸은 삶의 의욕을 잃고 자살을 생각하는데, 이때 여성의 존재는 영걸의 또 다른 자아로 볼 수 있다. 영걸은 시대를 비관하는 청년이고, 이 영화가 개봉된 시절은 박정희 군부독재의 폭압이 절정에 달하던 시기였다.

영걸이 자살하려 목에 밧줄을 걸 때, 책을 파는 방문판매원 노인이 나타나 '의지의 승리'라는 책을 사 보라고 말한다. 여기서 '의지의 승리'는 히틀러를 영웅과 우상으로 만들었던 다큐멘터리 제목이다. '의지의 승리'를 만든 영화감독 레니 리펜슈탈은 1934년 히틀러의 나치당 제6차 전당대회를 한 편의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는데, 이 영화는 '선전, 선동 영화'의 고전이자 걸작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 영화를 통해 히틀러는 절대적 존재로 등장한다.

노인이 판매하는 책이 '의지의 승리'라는 건 중의적 의미를 갖는다. 시대와 불화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청년(영걸)이 의지를 갖고 살아가라는 의미도 있지만, '의지의 승리'를 외치던 히틀러처럼, 박정희가 부르짖는 '유신'이 터무니 없는 독재자의 '의지의 승리'라는 비판이 내재되었다.

영걸은 우발적으로 노인을 살해하고 불태우고 자신도 자살하려 하지만, 그때마다 노인이 나타나 의지를 갖고 살라고 말한다. 영걸은 자신이 살인을 했다고 경찰에 자수하지만 증거는 없었고 경찰은 영걸이 환각, 환상을 봤다고 말하며 사건을 마무리한다.


이후 벌어지는 여러 사건들 역시 영걸의 상상 또는 꿈에서 벌어지는 내용이다. 영걸은 친구 문호와 함께 동굴에서 유골을 발견해 몰래 집으로 가져오고, 그 유골이 다시 살아나 신라 때 미혼 여성이라고 말하며, 그 여성과 육체 관계를 갖는 장면, 여성은 사람의 간을 먹어야 살아난다며 영걸의 간을 달라고 말하다 다시 유골로 돌아가는 내용, 수 많은 사람들의 머리가 고인류학자 이박사의 집에 도착하자 범인을 잡으려고 영걸이 공동묘지에 잠복해 범인과 격투를 벌여 범인을 살해하고 경찰에 알리지만 역시 아무 흔적이 남지 않은 장면, 이박사의 딸 경미의 목걸이가 첫 장면에서 본 낯선 여성이 했던 목걸이와 같고, 경미와 독이 든 음료수를 건넨 여성이 함께 죽기로 약속했던 사이라는 우연은 경미도 말기 암 환자라는 게 밝혀지면서 결국 첫 장면에서 본 낯선 여성과 경미가 한 사람일 수 있다는 암시를 한다.

이박사는 딸 경미가 억울하고 안타깝게 죽지 않도록 영걸을 죽여 경미와 함께 저승으로 가도록 지시하지만 결국 경미도, 이박사도 모두 죽어 나비가 되어 날아가고, 영걸은 술집에서 술에 취해 널부러졌다 경찰의 배려로 밖으로 나오면서 영화는 끝난다.

영걸이 겪은 모든 사건은 꿈으로 드러나지만, 꿈으로 드러낸 세상은 부조리하다. 영걸은 자신의 욕망 - 개인의 욕망 - 을 충족하려 몸부림치지만 끝내 모두 실패한다. 그는 낯선 여성이 건넨 음료수를 의심 없이 받아 마시고, 신라 때 여성과 육체 관계를 상상하고, 이박사의 딸 경미를 탐한다. 하지만 영걸의 욕망은 모두 실패하고, 그는 의지를 잃고 자살하려 하며, 자기 욕망이 이끄는대로 살인을 저지른다.

영걸이 겪는 일련의 사건은 영걸 개인의 욕망이 이끄는 '의지'로 보이지만 사실 영걸은 그가 사는 시대에 억압된 존재다. 영걸이 살던 시대는 군부독재가 지배하는 체제였고, 여기서는 개인의 자유가 철저하게 억압당하고, 개인의 의지가 꺾이는 사회에서 자유 의지를 가진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상상일 뿐이라는 감독의 비판적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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