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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건우 Jan 05. 2017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는 그가 감독한 18편 가운데 '환상의 빛' '아무도 모른다' '걸어도 걸어도' '공기인형'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에 이어 이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를 봤다.

그의 영화 대부분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것은 때로 끔찍한 공포이기도 하고, 애틋한 슬픔이기도 하다. 영화 속 일상은 분명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지만, 영화는 분명 실제의 삶과는 다르다.

이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도 지극히 일상적인 영화이고, 별 다른 결말도 보여주지 않지만, 그 자체로 훌륭하다. 그것은 결말까지 끌고 오면서 보여주는 인물들의 디테일에 관객이 깊이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에 단골로 출연하는 배우들이 모두 낯익어서 한편 반가웠는데, 주인공인 아베 히로시, 마키 요코, 키키 키린, 코바야시 사토미는 마치 홍상수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배우들처럼, 감독에게는 가족과 같은 배우들이라는 느낌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영화가 훌륭하기도 했지만,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몇 가지 장치들 때문이었다. 우선 주인공 료타는 아내에게 이혼당한 사내인데, 여전히 아내와 아들에게 미련을 갖고 어떻게든 결합을 하려는 꿈을 가진 사내이다.

료타는 선배가 운영하는 흥신소에서 사설탐정으로 일하고 있으며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경마륜이나 복권으로 일확천금을 노리고 있다. 그는 10년 전에 문학상을 받으며 데뷔한 작가이기도 한데, 그 이후 이렇다 할 작품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나 역시 주인공 료타처럼 문학상을 받고 데뷔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이렇다 할 문학적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렇다고 경제적 능력이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어서 료타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


료타는 연금을 받는 어머니에게 여전히 응석을 부리고, 누나에게도 기대고 있다. 어머니와 누나는 그나마 료타의 응석을 받아준다고 하지만, 아내는 전혀 그럴 입장도 아니고, 그럴 이유도 없다. 당연히 한때는 사랑했던 료타의 아내 쿄코는 료타에게 이혼을 요구하고, 다른 남자를 만난다.

객관적으로 보면 쿄코의 선택은 지극히 당연하고, 옳바른 판단이다. 하지만 료타는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모른채 여전히 쿄코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마치 거울을 보는 듯한 이 상황에서 내가 료타에게 하는 말은 온전히 나에게 하는 말과 같다고 생각한다.

료타는 자신이 쓰려고 준비하고 있는 소설을 성실하게 써야 한다. 그리고 돈이 되는 일이라면 그것에 우선해서 집중해야 하고, 경륜이나 복권 같은 도박은 무 자르듯 단호하게 잘라내야 한다. 만약 료타가 계속 도박에 연연하는 한, 그의 미래는 길거리 노숙자로 전락하는 길 외에는 없다고 확신할 수 있다.


료타는 재능 있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대기만성'이라는 것을 잘 모르고 있다. 어머니와 누나는 료타가 '대기'하지만 '만성'을 이루지 못했다고 아쉬워하지만, 내가 보기에 료타는 꾸준히 소설을 쓰다보면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는 걸 안다.

료타가 여전히 쿄코를 사랑하는 것은 분명하고, 아들 싱고에 대한 애정도 듬뿍하다는 걸 잘 알지만, 지금은 자신의 삶에 더 많이 투자하고, 스스로에게 엄격해야 할 때라는 걸 알아야 한다.


배우들이 보여주는 일상의 연기는 매우 훌륭해서 생활 속의 작고 사소한 것들까지 묘사하는 것이 이 영화의 큰 장점이기도 하다. 우리의 감정이 움직이는 것은 사실 아주 사소한 것들의 집합이자 움직임이라는 것을 감독은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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