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기욤 뮈소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다중우주, 평행우주론 또는 시간여행에 바탕한 많은 영화들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 영화에서 핵심은 '과거에 묶여 있는 나'라고 정의할 수 있다. 30년의 시간이 흐른 뒤, 그는 살아오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기회를 갖는다. 그리고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린다.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만나려는 것은, 좋은 일보다는 안타까운 일, 슬픈 일, 마음 아픈 일 등을 해결해보려는 마음이 클 것이다. 인간이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은 시간의 흐름은 인지한다는 것이고, 시간은 공간과 더불어 '나'와 '우주'를 객관화하는 추상적 능력이다. 아직까지 수많은 생물 가운데서 인간만이 이렇게 광범한 추상적 능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가졌던 기쁨, 슬픔, 분노, 집착, 사랑 등 모든 감정은 시간의 누적으로 생긴 것들이다. 감정이 휘발성인 반면 시간은 퇴적물처럼 그 휘발성 감정을 붙잡아 화석으로 만들고, 오랜 세월이 지나 다시 기억의 퇴적층에서 감정의 화석들을 발견하면 감정의 중추에 전기가 통하듯 감정의 불이 켜지는 것이다.
수현의 최대 소원은 애인 연아의 죽음을 막는 것이지만 현재의 수현과 과거의 수현은 서로 다른 입장을 보여준다. 당연하다. 시간이 흐르고, 서로 서 있는 자리가 다를 때, 같은 생각을 할 수는 없게 된다. 그것이 설령 같은 사람이라 해도.
현재의 수현에게는 딸이 있고, 과거의 수현에게는 애인 연아만 있을 뿐이다. 연아를 살리면 현재의 딸 수아가 사라진다는 딜레마는, 그래서 '살리되 평생 만나지 않는다'는 전제를 달게 된다.
수현은 평생 두 여자를 만났는데, 죽을 운명이었던 연아를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지만 정작 자신의 딸의 엄마이자 한때 사랑했던 혜원의 존재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심장학회에서 만난 혜원은 같은 의사이고, 미혼이었는데 어쩐 일인지 느닷없이 딸을 낳았다는 전화를 하고는 사라진다. 그렇다면 서로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우연히 하룻밤을 잤는데 임신을 했고, 혜원은 미혼인 상태에서 출산을 하고, 그 아이를 수현에게 주고는 사라졌다는 말인데, 이게 정상적인 내용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안타깝고 애처로운 연아와의 상황에 집중하기 위해 혜원의 상황을 얼버무린 것은 영화라서 어쩔 수 없다고 보이지만, 이야기의 전개가 매끄럽지 못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파괴하는 것은 찌질한 자기 연민에 불과하다는 것을 주인공은 모르는 듯 하다. 그가 남자이기 때문에 더더욱. 과거의 시간에서 연아는 두 번씩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는 것도 우연치고는 작위적이고, 슬픔과 고통을 배가시켜서 주인공의 연민을 키우려는 뻔한 의도로 보인다. 꼭 해피엔딩이 아니더라도, 관객의 공감을 얻을 만한 내용이라면 차라리 슬픔이 가득한 결말도 괜찮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