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영-깊은 강

002-김주영 한 권으로 읽기

by 백건우

월간문학 – 1972년 1월 41호

깊은 강

나루터에서 뱃사공을 하고 있는 장가는 비 내리는 늦은 밤에 배를 말목에 묶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을 안쪽에서 들리는 차 소리를 들었다. 체인을 감은 불도저는 강 옆에 있는 막소주집 앞에 섰고, 건장한 두 청년이 내렸다.

장가는 작년에 들었던 소문이 생각났다. 강에 다리가 놓인다는 소문이었다. 실제로 양놈과 함께인 답사반이 마을을 둘러보고 갔고, 마을에서는 이미 공사가 시작되었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소문은 무성했다.

장가는 나루터에서 이십년을 보냈다. 다리가 놓인다는 소문으로 마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면서 서운하고 야속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났지만 공사는 시작되지 않았고 떠돌던 소문도 가라앉았는데, 오늘 다시 그 소문이 생각난 것이다.

집에 돌아오는 딸 칠례는 건넌방에서 앓는 소리를 내며 아는 체도 하지 않았다. 칠례는 나이 들어 읍내 들락거리더니 급기야 가출을 하고 말았다. 한 달이 지나서야 편지가 왔고, 칠례는 서울에서 어느 집 식모살이를 하고 있노라고 했다.

하지만 잘 있다던 칠례는 보름 전 집으로 돌아왔는데, 임신을 한 상태였다. 억장이 무너졌지만, 엎질러 진 물인 것을 어쩌랴. 게다가 조산으로 아이는 나와서 곧 죽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다행히 칠례는 일어나 부엌에서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있었고, 장가는 다시 비 내리는 나루로 나갔다. 사공을 부르는 손님은 없었다. 아침을 먹으러 집에 돌아가니 칠례가 밥상을 차려 놓았다.

집 앞 막소주집에서 묵었던 두 청년이 나와 불도저를 몰고 나루터 반대 방향의 둔덕으로 향했다. 그들은 다시 막소주집으로 들어가면서 장가의 집을 보고 히죽 웃었다.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했고, 두 청년은 불도저와 막소주집을 오갔는데, 장가의 집 앞을 지날 때마다 히죽거리거나 휘파람을 불어댔다.

그 날 새벽, 깊은 잠에 들었던 장가는 퍼뜩 잠이 깼다. 빗소리, 강물 흐르는 소리, 바람 소리 사이에서 알 수 없는 단절음이 들렸다. 장가가 뛰쳐나가보니 헛간에서 낯선 남자가 후다닥 도망치는 모습이 보였다. 헛간에는 칠례가 있었다.

장가는 나루터로 가서 묶어 두었던 배를 풀고 배를 저어 강으로 나갔다. 강물은 크게 불어 있었고, 거칠게 굽이쳤다. 노련한 뱃사공 장가도 그 거친 물살에는 견뎌내질 못했다.

비는 하루를 더 내렸고, 두 달 뒤에는 불도저가 있던 자리에 작은 교회가 세워졌고, 칠례는 배를 새로 만들어 아버지의 뒤를 이어 뱃사공이 되었다.


이 단편소설은 1972년 1월 월간문학 41호에 실렸다. ‘휴면기’로 신인상을 받은 것이 불과 석달 전이었으니 이 소설이 데뷔작 이후 첫 번째 단편소설이었는데, 김주영의 단편소설집에 단 한 번도 실리지 않은 것은 퍽 놀라운 일이다. 여기에서 처음으로 ‘깊은 강’의 존재를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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