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영-안동문학 창간호

003-김주영 한 권으로 읽기

by 백건우

안동문학 창간호 – 197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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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1972년 10월

나는 어머니가 죽었다는 전보를 받는다. 고향에 사는 동생 현준이가 전보를 보냈다. 어머니는 나를 두려워했다. 나는 어머니에게 환부였고 과거 깊숙이 묻어 두었던 불행과 저주의 형상이기도 했다.

옛날에 어머니는 기생이었다고 했다. 얼굴을 모르는 난봉꾼이었던 아버지는 객사했다. 어머니는 결코 술집 여자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자신의 모습을 감추었다.

나는 중앙선 기차를 타기 위해 기차역으로 나왔으나 시간이 남아 근처 대폿집으로 들어갔다. 막걸리를 거푸 들이키며 고향에 있는 현준이를 생각했다.

현준을 처음 만난 것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초여름이었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과부였던 이모와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나를 이모에게 맡기고 사백여 리나 떨어진 곳으로 시집을 갔다. 어머니는 일년에 한 두 번 다녀갔다.

오월, 하늘이 맑은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툇마루에 앉아 있는 이모, 어머니 그리고 여섯 살 쯤의 사내아이를 보았다. 그 아이는 스스럼없이 어머니에게 달라붙었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나는 집쪽을 향해 혀를 내밀었지만 괜히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마을 변두리에 있는 대장간으로 갔다. 그곳에서 나는 이모와 어머니, 그 사내아이가 깜짝 놀랄 일을 저지르고 싶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콩알만한 돌멩이를 찾았고, 담장 아래서 툇마루에 앉아 있던 사내아이에게 고무줄 총을 쏘았다. 도망을 가다 이모에게 붙잡혔고, 뜰에 들어서 이모에게 얻어맞았지만 어머니는 ‘언니, 그만해요’라며 나를 때리는 이모를 말렸다.

기차 시간이 되어 나는 객차에 올랐고 강아지를 안고 있는 노파의 맞은편에 앉았다. 기차가 출발하고 노파는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눈을 감고 있었다.

현준을 다시 만난 것은 그가 초등학교 4학년 여름이었다. 나는 그때 중학교 삼학년이었다. 우연히 둘만 방에 남아 있게 되었고, 나는 현준의 얼굴에 엄마의 얼굴을 그린다고 크레파스로 칠했다. 어머니가 나를 야단칠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서. 하지만 어머니는 아무 말이 없었고, 그 이후 중학교 마지막 겨울방학에 잠깐 봤을 뿐, 그 후로는 만난 적이 없었다. 이모의 대필 편지로 어머니와 현준의 소식을 단편적으로 알고 있을 뿐이었다.

어느 시골역에서 노파가 잠든 사이 데리고 있던 강아지가 객차에서 내리고는 타지 않았다. 노파는 잠에서 깨어 강아지를 찾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찾기를 포기했다.

나는 고향의 기차역에 내려 다방으로 들어갔다. 다시 다방에서 나와 구두수선점에서 상가 든 집을 물어보자 위치를 알려주었다.

상가집에 들어서자 이모가 나왔고 그 뒤로 현준이 따라 나왔다. 현준에게서 퉁길 때만 짓까부는 목각인형의 허약한 운명을 느꼈다. 무기력한 현준을 남기기 위해 어머니는 평생을 소모한 것이었다. 나는 현준의 다리를 걸어 방바닥에 넘어뜨리고 싶은 충동을 짓눌렀다. 하지만 현준의 모습을 보는 순간 더 이상 현준과 내가 서로를 부정하며 살 수 없음을 느꼈다. 끝.


이 단편 소설은 한국문인협회 안동지부의 기관지 [안동문학] 창간호에 실린 이후, 다른 어떤 작품집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유일한 단편이다.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한 [김주영 깊이읽기]에는 [안동문학]에 실린 작품이 ‘김치 빌리지’라고 되어 있지만 이것은 잘못된 내용이다.

또한 [문이당]에서 출간한 김주영의 중단편 전집(2001년 2월 20일 발행)에도 이 작품은 빠져있다.

[안동문학]의 탄생은 김주영의 문학 활동에 있어 중요한 시기와 맞물려 있다.

한국문인협회 안동지부는 1971년부터 추진되었고, 1971년 9월 16일에 안동지부 창립총회를 열었다. 초대지부장은 이동희 씨였으며 1971년 10월에 김주영은 [월간문학]에 단편 ‘휴면기’로 당선되어 안동지역의 촉망받는 소설가로 등장한다.

김주영은 1972년에 제2대 지부장에 선출되어 [안동문학]을 창간하는 등 의욕적인 활동으로 지부의 위상과 기틀을 다지는 기반이 되었다. [안동문학] 창간호는 1972년 9월 15일 발간되었는데, 이는 경상북도 문협지부의 기관지로는 최초의 일이었다.


창간호에 실린 회원과 작품은 다음과 같다.

시/예종숙 : 출생기. 권오규/새야 외 2편(유고), 김성영/흙의 미학 외 4편, 김원길/소리 2제 외 4편, 김지섭/겨울 산 까마귀 외 1편, 신승박/개구리 울음 외 1편, 염순규/죽령에서, 임병호/파랑새 외 1편

시조/김시백/선인장 외 4편, 김현/신열 외 4편, 박시교/목다리 외 1편

소설/김주영/출가, 박정완/닮은 사람들, 임명삼/무서운 아이들

아동문학/권정생/방패연과 느티나무

평론/이오덕/농촌 아동의 시

이밖에 한국문인협회 안동지부 정관, 회원명단, 임원명단, 연혁, 편집후기가 실려 있다.


창간사 – 김주영

아무도 우리를 반겨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 미워하는 이도 없다. 때문에 우리는 이토록 철저한 고독을 느낀다. 가난한 사람끼리 모이면 서로 스스럼없이 눈물겨웁 듯, 서로를 걱정하며 또 손 꼭 잡아주는 진통 속에서 이 책을 펴낸다. 이런 일이 잘된 것이든 못된 것이든 간에, 우리딴엔 그야말로 한 톨 씩의 영혼을 쪼아내어 지어낸 것이기에 눈치없는 대로 우선 보람부터 갖는다.

이것을 계기로 우리는 튼튼히 속살을 올려야 하고, 그러나 누가보아도 투명하게 맑은 속살을 찌워야 하겠다고 서로 다짐해 본다.

앞으로 [안동문학]을 오래도록 펴내어서 이 불모의 땅에 신문학의 꽃을 피워야 할 무거운 짐을 우리들이 지고 있다. / 197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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