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근

창작시

by 백건우

첫 출근

밤내 잠을 설치며

두근거리는 가슴

설레이는 마음으로 아침을 맞는다

얼마나 오랫동안 서성거렸던가

밝은 하늘아래

휘청거리며 지내왔던 실업의 나날

눈부신 햇살도 아름답지 않았고

싱그러운 바람이라도 내겐 우울했다

모두가 제자리를 찾아 떠난

텅빈 거리에서

실업의 짙은 그늘에 목이 메어

발걸음은 천근 만근으로 끌리고

하루의 생활은

안양천 썩은 물에 섞여 흘렀다

살아가는 것을 책임지지 못하며

가난과 궁핍으로 나와 핏줄의 얼굴에

웃음이 사라졌던 오랜 시간동안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수없이 되뇌이곤 했다

모두들 일하는 시간에

거리를 메우는 사람,사람들

그리고 일하지 않는 나

일하지 않으면서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들은 위선이고 거짓이다

공허한 메아리다

화려한 옷차림의 저들과

아름답고 귀족이 되고싶어 하는 저들과

일하지 않는 나는

생산하는 노동자의 경멸의 대상이다

아니,반드시 그래서만은 아니다

모두가 일하는 시간에

거리를 나돌아 다니다보면

가슴이 콱콱 막히고

부끄럽고 죄스러운 마음이 들고

왠지 불안하고 공중에 발이 뜨는 듯한

공허한 마음이 들어

마치 큰 죄를 짓고 있는 기분이었다

이제, 뛰어다닌 보람이 있어

공장에 출근을 한다

만원버스에 시달려도 불쾌하지 않고

먼지앉은 꽃을 봐도 즐겁다

공장으로 향하는 많은 노동자들의

뒷모습까지가 눈물겨웁고

공단거리가 환하게 밝아보인다

또 다른 실업노동자가 거리를 방황하고

내일의 생활을 걱정하겠지만

나는 그들의 희망까지도

마땅한 짐으로 짊어지고

씩씩하고 건강한 노동자로

공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

1980년대 중반. 병장으로 전역하고 먹고 살아야 해서 일자리를 찾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구로공단-지금은 사라졌지요-의 어느 공장에 취직하고 이 시를 썼습니다. 가난한 노동자에게 실업은 죽음과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청년세대의 실업, 취업문제가 심각한데, 힘들게 구한 직장에 나가는 그 마음을 저는 이해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창작 연재를 시작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