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영 단편소설
단편-열기-1973년 6월(현대문학 222호)
중대 배구시합에서 우승한 선물로 암퇘지 한 마리를 받았는데, 그것을 내가 맡아 기르게 되었다. 취사반 졸병이었던 나는 돼지를 기르는 조건으로 사역을 면제 받았다. 3개월만 잘 기르면 내 임무는 끝나는 것이고, 그동안은 편하게 군대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며칠 전부터 암퇘지는 발정을 시작했고,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멀리 떨어진 민가에서 수퇘지와 교미를 시켜주면 해결될 일이지만 그럴 방법이 없었다. 수송부에 부탁하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그 와중에 정보과에서 호출을 했다. 수색조가 GOP 쪽에서 잡아 온 민간인이었는데, 횡설수설 하는 말이 사투리였고, 내가 쓰는 말과 비슷해서 나를 호출한 것이라고 했다.
그 청년은 횡설수설 하는 것이 정신이 조금 나간 것으로 보였고, 그가 나와 같은 고향의 사람이라는 것을 소대장에게 말하자, 소대장은 밥이나 먹여서 내보내라고 했다. 나는 그 청년의 얼굴을 보다 한 쪽 눈에 낀 백태를 보고 오래 전 일이 떠올랐다.
장돌뱅이 최영감은 평생을 외장으로 돌던 늙은이로, 우리는 최영감을 잘 알았다. 그는 보잘 것 없는 방물꾸러미를 내 놓고 장터에 앉아 하루를 보냈다. 그의 물목은 몇 년이 지나도록 변함이 없었고, 우리는 최영감이 조는 사이 그의 물건 가운데 하나 둘씩을 훔쳐 먹었다.
최영감은 우리의 행패를 알면서도 모르는 채 했지만, 도가 지나치자 시범적으로 한 녀석이 걸렸을 때, 장죽으로 뒤통수를 호되게 엊어 맞았다. 그 뒤로 최영감은 소년 하나를 거느리고 다녔다. 그 소년의 한쪽 눈에 백태가 있었다.
소년은 최영감을 버리고 떠난 아내가 낳은 아이라고 했다. 시간이 흘러 최영감은 보이지 않았고, 소년만이 혼자 방물을 들고 외장을 도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청년에게 저녁을 먹이고, 돼지우리 옆 짚더미에 가볍게 묶어 두고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그 사이 고향 면사무소에 있는 친구에게 연락해 가족을 찾아주기로 생각했다.
다음 날부터 나는 암퇘지와 청년 둘을 돌봐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암퇘지의 발정이 극에 달할 때, 짚더미에 묶여 있던 청년은 수음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몹시 혐오스러웠지만, 암퇘지가 발정을 할 동안 사내가 떠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흘 뒤, 헌병초소에 어떤 여자가 찾아왔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청년을 데리고 외출증을 끊어 밖으로 나갔다. 거기에는 한 남자와 젊은 여자가 있었다. 젊은 여자는 남자를 끌어안고 울었다. 그 모습에서 발정난 암퇘지가 오버랩 되었다.
부대로 돌아온 나는 암퇘지가 우리를 부수고 달아난 것을 발견했다. 나는 부대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돼지를 찾을 수 없었고, 마침내 소대장에게 보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실을 안 중대장은 나와 소대장을 닦달했고, 중대 전원이 돼지를 찾아나섰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두 달 뒤 휴가를 받은 내가 집에 있을 때, 젊은 아낙이 호박을 이고 찾아왔다. 헌병 초소에서 봤던 아낙이었다. 그녀가 내려 놓은 호박은 그때의 호의에 대한 성의 표시였다. 그리고 그 아낙의 배가 부른 것을 본 순간, 도망간 암퇘지의 영상이 떠올랐다. 그 잉태의 소망은 저 멀리 최영감의 방물전부터 시작되었다는 느낌이었다.
이 단편소설은 1973년 6월 현대문학 222호에 실렸다. 이후 김주영의 단편소설집에 들어가지 않은 채 알려지지 못한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