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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건우 Feb 16. 2019

불편한 까닭

'막노동 부모를 둔 아나운서 딸'이라는 제목으로 공유되는 글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읽었고, 물론 나도 읽었다. 사람들은 이 글에 감동했다면서 공유하고, 글쓴이를 칭찬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마음이 불편했다. 왜일까.

여성이 아나운서가 된다는 건, 사회에서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여성이 전문직으로 사회에서 일하는 건 아나운서 뿐아니라 훨씬 폭넓고 다양하기 때문에 '아나운서'라는 직업이 특히 도드라지는 여성의 성공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개천에서' 자란 자신(여성)이 '용'이 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말하고, 그것이 막노동을 하는 부모의 덕이었다고 겸손하게 말하는 것이 한국의 전통 이데올로기인 유교적 입장에서는 지극히 당연하고 올바른 태도인데, 왜 내가 불편하다고 느끼는 걸까.

아나운서가 된 여성은 자신을 키워주신 부모님이 배우지 못한 분이고, 평생을 막노동을 하며 자식을 키우셨다고 했다. 그런 부모를 보며 여성은 어려서부터 스스로 공부하고, 집안일을 하고, 고생하는 부모를 위해서라도 자신이 올바르게 살아야 하고, 좋은 직업과 신분의 상승을 이루어야 한다고 다짐했노라고 말한다.

자신이 아나운서가 되었을 때, 주변의 동료들 집안이 대개 의사, 교수의 부모를 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자신의 부모 직업을 분명하게 말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도 말한다.

글의 내용에서 흠잡을 부분은 없다. 문제는 이 글을 쓴 의도에 있다. 내가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도 바로 '의도'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글을 쓴 전직 아나운서 여성은 자신을 키운 부모님을 고맙게 생각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을지 모른다. 하지만, 글에서 읽히는건, 자신의 부모, 그것도 배우지 못한 부모를 드러내면서 자신을 스스로 '개천에서 난 용'이라고 지칭할 때, 그건 사람들이 읽어주었으면 하는 '의도'가 있는 것이다.

왜 자신을 '개천에서 난 용'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자신의 부모가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사람들이어서, 자신이 그 부모의 삶에서 많이 벗어나 '용'처럼 하늘로 날아올랐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의도였을까. 자신의 부모는 비록 지금도 '개천'에 있지만, 자신은 그 '개천'에서 벗어났고, 지금은 '용'이 되어 더러운 개천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으니, 그런 우월감을 드러내고 싶어서였을까.

세상이 좋아졌다고는 해도, 지금도 무수히 많은 부모들이 '개천'에서 살고 있고, 그 분들은 여전히 한글도 잘 모르고, 말하고, 글쓰기를 잘 못한다. 시골에 사는 부모들은 농사를 짓고, 물고기를 잡고, 산나물을 채취하고, 비닐하우스에서 땀을 흘리며 일하고 있다. 그 분들에게는 그런 삶이 너무나 당연해서 자신들이 '개천'에서 사는 줄 조차 인식,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도시에서 막노동을 하며 사는 삶이 '개천'에서 사는 삶이라는 규정은 누가 하는 걸까. 이 여성은 너무도 도식적이고 고정적으로 배우지 못하고, 공사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개천'에서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런 삶에서는 무조건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를 포함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부모가 국민학교도 나오지 못한 분들이지만, 나는 내 부모가 '개천'에서 살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학력과 경제력을 기준으로 '개천'과 '용'을 구분하는 것이야말로 그 여성이 철저하게 자본주의 체제에 종속되어 있고, 사회를 보는 시각이 흑백으로만 보인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세상-자본주의 사회-이 그렇게 구조화되어 있다고 해서, 나 자신까지 그런 체제의 구조와 논리를 내면화하여, 자기 부모의 삶과 자기의 삶을 구분 짓고, '개천'과 '용'으로 나누는 것이야말로 지극히 위험한 생각이다. 그래서 나는 그 글을 읽으면서 거의 본능적으로 그 여성의 글이 불편했다.

전직 아나운서 여성의 글은 반듯하고 올바른 전통사회의 이념을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수의 지지와 응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민중' 그 자체인 부모-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부모-를 대상화하고 그 분들의 삶을 소외시키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무엇보다 내 부모부터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분들이다. 내 주위에 있는 많은 지인, 친구, 친척들의 부모님 역시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분들이다. 그러니 우리의 부모들 가운데 대부분이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분들인데, 그들의 자식들은 거의 모두 부모들보다는 나은 삶을 살고 있다. 전직 아나운서 여성의 부모님만 특별한 경우도 아니고, 그런 부모님을 보면서 '더 열심히' 살아온 것이 이 여성뿐만도 아니다.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삶을 마치 특별한 것처럼 '개천에서 난 용'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면서 '미화'한 글이 불편한 건 나만 그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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