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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건우 Sep 01. 2019

9월의 시작

9월

말복을 지나면서 더위가 한풀 꺾이더니, 처서가 되니 아침, 저녁으로 바람이 선선하다. 시나브로 9월이 도착하고, 바람은 한낮에도 시원하다. 따가운 햇살을 지나는 선선한 바람을 느끼며, 가을이 새삼 애틋하다.

문을 조금 열어 놓은 창밖으로 곤충들의 우는, 아니 노래하는 소리가 정겹다. 그저 여치나 귀뚜라미인줄만 알았더니, 베짱이도 여러 종류가 울고, 귀뚜라미도 한두 녀석이 아니다. 여기에 방울벌레며 풀종다리까지 마당의 잔디 속에서, 나무 위에서, 뒷마당 풀숲에서, 옆집 우거진 나무숲에서 끊이지 않고 노래한다.

곤충의 울음, 아니 노래소리는 백색소음이어서 듣기에 거슬리지 않는다. 아침부터 밖에서 떠드는 늙은 여자의 새된 목소리에는 짜증이 솟구치지만, 곤충의 노래는 마음을 편하게 가라앉히는 힘이 있나보다.


며칠 게으름을 부리다보니,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일상'은 우리가 이어나가는 리듬인데, 리듬이 깨지지 않고, 오래도록 지속할 수 있는 힘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무엇보다 경제력이다. 먹고 살 수 있을 만큼의 수입이 있어야 한 가족, 가정을 유지할 수 있고, 가족 구성원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

자본주의의 본질은 '개별적 생존'에 있다. 즉 누구나 시장에 뛰어들어 경쟁을 해서 이긴 자가 부를 독점하고, 도태되는 자는 빈민의 구덩이에서 허덕거리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에서 자본주의의 원리를 명명백백하게 해부했고, 소수에 의한 다수의 착취가 역사법칙의 하나이며, 역사는 질적 변화를 통해 뒤바뀐다고 예언했다.

자본주의를 옹호하고 종교화하는 사람들은,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이 거의 절반은 사회주의(공산주의) 이론을 받아들인 혼종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거나,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체제가 위협을 받을 때마다 개혁(개선)을 통해 민중의 저항을 무마해 왔다.


무상교육, 무상급식, 의료보험, 복지그물망 같은 것들은 모두 사회주의(공산주의) 이론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8시간 노동, 노동조합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지금 주5일 근무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나처럼 50대 이상인 사람은 토요일 오전근무를 하거나, 토요일까지 주6일은 물론, 연장 근로, 야간 근로를 당연하게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는 걸 잘 안다. 지금도 그런 노동현장이 없는 것은 아니나, 예전과는 분명 다르다.

나는 오래 전부터 주장했다. 주4일 근무, 하루6시간 노동. 1년에 한달은 무조건 유급휴가. 이런 것들은 지금의 경제 조건에서 충분히 가능하지만, 자본은 마지막 순간까지 완강하게 거부한다.


기본소득제도 반드시 필요한데, 자본은 거부하고 있다. 오로지 육체노동(사무직도 육체노동자다)을 통해 임금을 받아 생활하는 노동자들은 해고되면 당장 수입이 사라진다. 영세자영업자도 사업이 망하면 수입이 사라지고, 빚더미에 앉는다. 약간의 은행 잔고가 있다고 해도 부자가 아닌 다음에는 몇 달 버티지 못한다. 일상의 리듬이 깨지는 것이다.

기본소득제는 추락하는 노동계급을 받아주는 안전한 복지 그물망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일상'의 리듬이 깨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최소한의 복지가 기본소득제다. 여기에 '연금'을 포함하면, 퇴직한 노동자가 비참하게 살지 않아도 되는 인간적인 제도가 되는 것이다.


일상은 어쩌면 너무 단조로워서 소중함을 잊게 된다. 밤이면 돌아와 잠을 잘 수 있는 곳이 있고, 하루 두 끼, 세 끼의 끼니를 해결할 수 있고, 철마다 한두 벌의 옷을 사 입을 수 있다는 것이 귀하고 소중하다. 이런 일상을 유지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돈은 노동을 한 대가로 받는다. 근본에서, 자본주의 체제에서 사는 사람은,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생존을 위해 노동해야 하고, 자신의 재능이나 하고픈 일을 선택하는 것보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동을 우선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저마다의 재능과 꿈을 추구하는 사회는 영원히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사회를 이상향으로 그리고, 추구해야 한다. 인간이 소모품으로 쓰이다 죽는 지금의 사회는 인류의 역사 이래 본질이 변하지 않은 계급사회의 연장이고, 인간이 '해방'된 사회는 아니기 때문이다.


9월의 첫 날을 맞아, 아들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소박하게 밥상을 차리고, 작은 케잌도 잘라 나눠 먹었다. 평범한 일상은 우리가 나이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변화가 생길 것이다. 육체는 늙어가고, 정신은 흐려질 것이고, 삶을 이어가기 어려운 순간이 다가올 것이다. 한여름의 폭발하는 생명도 가을이면 시들어가듯, 사람도 시들어 가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자연으로 돌아가기를 기꺼워할 때, 우리의 일상은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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