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명품
발우 - 목기
앞에서 소개한 영국의 목공방 Robin Wood의 제품을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의 발우가 떠올랐다. '발우'라고 하면 당연히 스님과 불교를 떠올릴테지만, 종교를 말하자는 것은 아니다.
'발우'라는 그릇이 갖는 종교적, 철학적 의미가 있음은 당연하지만, 불교에서 중이 '발우'를 갖고 다니는 것과 '발우'의 형식미, 디자인의 아름다움에 관해 말해볼 까 한다.
잘 아다시피, '발우'는 불교에서 중들이 가지고 다니는 공양 그릇이다. 민간에서는 거의 '발우'를 사용하지 않는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발우는 기본이 5첩이고 7첩짜리가 나중에 만들어졌지만 그릇 숫자가 많은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오히려 그릇 숫자가 많을수록 수행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수행하는 중에게 있어 '소유'의 개념은 존재하지 않으며, 한 곳에 머무는 것 또한 용납되지 않는다. 하룻밤을 묵든, 며칠을 묵든 사찰에 들른 중은 자신의 발우를 선반에 올려 놓는 것으로 자신이 이곳에 머물고 있음을 알린다.
머물고 떠남이 바람과 같은 중에게 있어 '발우'는 공양을 위한 최소한의 도구이자 유일한 도구이기도 하다. 그에게는 걸친 옷과 바랑 속 '발우'만이 가진 것의 전부이고, 그렇게 비어 있는 삶으로 곧 충만한 수행을 하게 되는 것이다.
발우는 그런 단촐한 삶을 위한 중에게 꼭 맞는 디자인이며, 가장 혁신적인 디자인이다. 아마도 스티브 잡스가 이 '발우'를 봤다면 감탄했을 것이다.
간결함과 완벽함을 두루 갖춘 그릇 '발우'는 가장 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그릇이며, 가장 작은 그릇부터 큰 그릇까지 최적의 크기로 디자인 되어 있고, 옷칠이 되어 있어 마른 헝겊으로 닦아내면 따로 설겆이를 하지 않아도 깨끗하게 보관할 수 있다.
또한 나무로 만들고 옻칠을 해 오래 보관할 수 있으며, 쉽게 상하지도 않는다. 보관하기에도 좋고, 펼쳐 놓으면 하나의 밥상이요, 제자리에 넣어두면 고요히 침묵하는 수행자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발우'는 형식미 그 자체가 '불교적 수행'을 드러내는 현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