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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건우 Feb 06. 2021

'세시봉'과 김진숙, 노동계급

‘세시봉’과 김진숙, 노동계급


지금 한진중공업의 크레인에 올라 농성하고 있는 김진숙 지도위원의 트위터 글이 화제다. 먼저,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를 반대하며 힘겨운 투쟁을 하고 있는 김진숙 지도위원께 마음 깊이 응원과 격려의 말씀을 드린다.

지난 설날 특집으로 텔레비전에서 ‘세시봉과 친구들’이라는 프로그램을 했다. 우리 세대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가수들이지만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낯선 인물 일게다. 나도 모처럼 70년대로 돌아간 듯 즐거운 시간을 경험했다.

하지만 김진숙 위원은 이들 ‘세시봉과 친구들’의 공연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아무도, 누구도 말하지 않던 이야기다. 물론 누군가는 말했을 것이고, 또한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다만, ‘세시봉’ 시대를 노동계급의 입장에서 바라본 글을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올린 사람이 그만큼 없기 때문일 것이고, 그것은 결국 노동계급의 입장을 말하고 옹호하는 사람이 그만큼 적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 역시 김진숙 위원을 좇아 ‘세시봉’ 시대와 당시를 살았던 사람으로, 노동자의 삶과 생활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세시봉’ 프로그램을 즐겁고 재미있게 봤다. 보면서 얼핏 70년대를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70년대의 그림자를 지웠다. 70년대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 시기의 엄혹했던 분위기, 힘겨운 나날들에 대한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것도 유쾌한 마음은 아니었다.

마음속에서 지운다고, 머리에서 잊는다고 사라질 기억은 아니었다. ‘세시봉’을 보는 순간만큼은 좋은 기억들만 추억하고 싶었다.

진보 진영의 사람들에게는 무의식으로 침잠한 강박이 있는 듯하다. 시대 상황에 자신의 삶을 일치시키고, 시대의 아픔과 계급의 고통을 ‘개인화’, ‘내재화’하는 것이 그것이다. 물론 이것 때문에 진보 진영이 계급적으로 뛰어나며, 도덕적으로 차별화를 갖는 것임에 틀림없다.

늘 역사를 의식하고, 나와 계급을 일체화하며, 개인의 경험을 역사적으로 증폭하는 일은 ‘유물론적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사람에게는 당연하고 필수적인 항목이다.

특히 한국(남한)처럼 불행한 현대사를 가진 나라에서 소위 진보적인 삶을 지향하는 사람에게는 현대사와 자신의 삶 전체가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음에 틀림없다. 80년대 이후 소위 ‘학출’들이 대거 배출되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관념적 사회주의’가 마치 우리의 미래인 것처럼 왜곡된 상황에서 현장 노동자들은 그들에게 ‘지도’를 받는 입장이 되었고, 노동계급의 조직과 정체성에 문제가 생기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세시봉’은 1958년부터 1977년까지 존재한 음악다방이지만 김진숙 위원은 당시의 ‘순수’했던 청년문화 전체를 비판하고자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순수’라는 말이 사회 문제에 관심이 없고, 개인적인 삶에만 관심이 있으며, 무비판적인 사고방식, 체제순응적인 태도 등을 아우르는 상당히 모욕적인 단어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소위 ‘운동’을 조금이라도 했던 사람이라면 이 ‘순수’라는 단어가 얼마나 치욕스럽고 경멸의 뜻을 담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런 면에서 김진숙 위원은 ‘세시봉’으로 표현되는 ‘순수의 시대’에 대한 경멸을 말하는 것일테다.

특히 70년대 노동자는 마치 불가촉천민과 같은 처지에 있었다. 70년, 전태일 선배의 분신으로 많은 지식인들이 노동자의 처지에 관심을 갖기는 했지만, 노동현장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당시 텔레비전, 라디오는 연속극과 쇼쇼쇼와 사랑타령으로 지금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사상계는 폐간하고, 씨알의 소리와 창작과 비평, 뿌리깊은 나무가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고, 진보 진영은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였다.

1970년대나 2000년대나 노동계급의 처지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70년대를 고통과 시련의 시기로 기억한다면, 지금도 마찬가지다. 상대적으로 70년대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정보화의 혜택을 노동자들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적은 차이겠지만, 근본에서 달라진 것이 없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다만, 진보적 삶을 사는 사람들이 흔히 갖는 ‘경직성’ 만큼은 털어버려야 하지 않을까. 삶의 원칙과 경직성은 다르다. 우리는 변함없이 진보적 태도를 유지하고, 실천해야 하지만, 심각하고 진지한 태도만으로 일관된 삶은 스스로도, 주위 사람도 피곤하게 만든다.

‘운동’이든 ‘변혁’이든, 심지어 ‘혁명’이라도 즐겁고 기쁘고 행복한 마음으로 할 수 있어야 하고, 기회주의적 삶을 살지 않는 한, 진보적인 삶은 결국 평생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하는 ‘생활’이기도 한 것이다.

예전에 정태춘 씨가 한 말이 생각난다. 정태춘 씨는 초기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노래를 통해 대중의 인기를 많이 받았으나 점차 사회 비판적인 노래를 시작했고,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받아주지 않게 되고, 주로 집회나 소극장 공연을 통해 노래했다.

정태춘 씨는 자신의 초기 노래가 ‘순수’했다고 말하면서, 그 노래를 평가절하 했는데, 정작 ‘현장’에 있던 나는 그 초기의 아름다운 노랫말에서 많은 힘을 얻었다. 1970년대부터 노래한 정태춘의 노래 ‘촛불’을 좋아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관념론자로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70년대가 노동자에게 고통과 시련의 시기였기 때문에 ‘순수’한 노래를 부르고 즐긴 사람들을 ‘부르주아’로 매도하는 것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혁명가에게도 애틋하고 아련한 사랑의 순간이 있는 것이고, 인간인 이상 시대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순수의 시대’에 매몰되어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어리석을 뿐, 우리는 시대의 낭만과 역사적 과제를 혼동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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