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는 속상했다.
실습생이 온 첫날. 실습생에게 아이들과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먼저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장난감으로 맞아서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고,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아이를 붙잡고 씨름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영우아. 친구가 장난감을 주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데 쟤가 계속 안줬단 말이에요!"
잔뜩 흥분해 똑같은 말만 반복하던 영우가 시간이 지나자 진정하고 마루의 질문에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삐죽이는 입에서 간신히 나온 대답은
"달라고 말로 해야돼요..."
역시 시간이 지나고 진정이 되면 아이들도 이성적으로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된다.
마루는 영우의 눈을 응시하며 다시 한번 되물었다.
"그래도 주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하지?"
"선생님한테 도와달라고 말해요."
마루는 영우와 양손을 맞잡으며 영우의 말에 긍정해 주었다.
"영우가 잘 알고있네. 우선 달라고 얘기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선생님하고 같이 방법을 찾아보는거야.
앞으로 그렇게 해줄 수 있을까?"
영우는 말없이 마루의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루는 교실로 돌아와 연서의 상태를 다시 한 번 살폈다.
다행히 더 부어오르지 않았고 상처도 날 것 같지는 않았다.
그사이 연서와 마루 곁으로 다가온 영우는 몸을 베베꼬며 삐죽거리는 말투로 어려운 사과를 건넸다.
"미안해."
"괜찮아."
많이 놀랐던지 아직도 눈에 눈물이 맺혀있는 연서는 사과를 받아주었다.
'휴'
속으로 기나긴 한숨을 내쉬는 마루였다.
그 짧은 시간에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버린 것 같았고, 머리가 다 지끈거렸다.
그리고 멀찍이서 이 사태를 모두 지켜보고 있던 실습생에게 다가가서 말을 건넸다.
"놀랐죠? 놀다보면 아이들끼리 종종 싸움이 나기도 해요"
실습생이 애써 웃음을 지으며 마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실습 첫날 겪는 난처한 상황에서 고장난 리액션으로 대답하는 실습생을 보며 마루는 생각했다.
'첫날부터 교실한번 요란 뻑적지근 하다고 생각하겠군'
자신의 탓도 아닌데, 괜히 알 수 없는 민망함과 미안한 마음이 드는 마루였다.
그리고 마루는 다시 입을 열었다.
"선생님. 나한테서 배울것만 배워가요.
'아, 나도 현장에 가면 저렇게 해야지. 저렇게 되어야지' 하는 것도 배우는 거지만
'나는 저렇게는 하지 말아야지' 하는 것도 배움의 일부니까요."
마루는 헬렌켈러가 아니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선생님도, 누구보다 너그러운 선생님도, 누구보다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선생님도,
누구보다 수업을 잘하는 훌륭한 선생님도 아니었다.
그저 평범하게, 연차와 함께 차근차근 경험을 쌓아가는 수많은 선생님들 중 한명일 뿐이었다.
하루종일 붙어있으면서 관찰을 당하는 동안 좋은 모습만 보여줄 수는 없을 터였다.
지금, 누구보다 자기 객관화가 잘 되어있는 마루는 실습생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조언을 하고 있었다.
오늘 영우는 마음이 영 힘든 날이었다.
좋아하는 장난감은 친구에게 빼앗겼고, 자기도 모르게 화가나서 한 행동이 억울하게
꾸지람으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미안하다고 사과는 했지만, 오늘은 연서와 더이상 같이 놀지 않았다.
괜히 마루선생님이 미워보였고, 이미 상해버린 기분에 하루종일 놀이가 재미있지 않았다.
그때, 영우의 눈에 학생선생님이 들어왔다.
학생선생님은 앉아서 다른 친구들과 생글생글 웃으며 놀아주고 있었다.
말투도 마루선생님보다 친절하고 상냥한 것 같았고, 같이 놀면 마루선생님하고 노는 것 보다
훨씬 재미 있을 것 같았다.
갑자기 방금 전 친구를 때리면 안된다고 얘기하던 마루 선생님의 얼굴이 무서운 표정으로 변해
영우의 눈앞에 떠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천사같은 학생선생님의 얼굴이 교차편집 되었다.
완벽하게 마녀와 천사가 대비되는 느낌이었다.
괜히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진 영우는 거침 없이 걸어가서 학생선생님의 무릎 위에 앉았다.
오늘의 사건을 모두 목격했던 학생선생님은 이내 영우의 기분을 알아채고 꼬옥- 안아주었다.
그리고 교실 반대편-
영우와 실습생의 행동을 마치 느리게 감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바라보고 있는 마루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내가 최고라며... 집에가서도 우리선생님 보고싶다고 했다면서....
어떻게 그렇게 사랑이 쉽게 변하니...'
속으로 눈물을 삼켜보는 마루였다.
'나도 예뻐만 해보고싶다...싸움이 나든, 잘못을 하든 혼내지 않을 수 있으면
나도 예뻐만 해줄 수 있다고ㅠㅠㅠ'
괜히 억울한 마음에 버림받은 조강지처가 된 기분이 들 때쯤, 어깨에 충격과 함께 무게가 실려왔다.
학기초부터 껌딱지처럼 안겨오던 다온이가 어김없이 마루의 어깨에 매달려 온 것이다.
새로운 인물의 등장에 쉽게 흔들리는 사랑이 있는가- 하면, 한사람만 보고 직진하는 사랑도 있기 마련이었다.
'나는 이제 선생님 필요 없어! 학생선생님이 더 좋아!'
라는 태도와 눈빛으로 섭섭함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영우를 보며 마루는 생각했다.
'에잇, 다 필요없어! 그래 다 가버려!!!!!!'
품안의 다온이를, 더 끈끈한 껌딱지를 꼬옥- 끌어안으며 속으로 외쳐보는 마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