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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 Jan 27. 2018

삶은 아름다운가

영화 <박하사탕>

예전에 어떤 인터뷰를 봤는데, 세대별로 사람들에게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냐고 물어보는 내용이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고 대답했다. 60대는 50대로, 50대는 40대로. 중년 세대는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청춘을 그리워했다. 대학생은 성인이 되니 머리 아픈 일이 많다며 차라리 공부에만 신경 쓰면 되는 고등학생 때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고등학생은 입시 스트레스가 덜한 중학생 때로. 중학생들은 아무 걱정 없이 놀 수 있는 초등학생 때로. "유치원 때가 좋았죠~"하며 너스레를 떨던 초등학생은 정말 귀여웠다. 


이렇듯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감정은 보편적이다. 그건 아마도 단순히 젊음을 그리워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과거로 돌아가서 바꾸고 싶은 것들이 많아진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그때 만약 이랬더라면, 또는 그때 그러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모르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YB의 '박하사탕'은 이런 감정을 가사로 풀어낸 노래다. (노래가 정말 좋으니 꼭 들어보시길)


떠나려 하네 저 강물 따라서
돌아가고파 순수했던 시절 
끝나지 않는 더러운 내 삶의 
보이는 것은 얼룩진 추억속의 나

고통의 시간만 보낸 뒤에는
텅 빈 하늘만이 아름다웠네 
그 하늘마저 희미해지고 
내 갈 곳은 다시 못 올 그 곳뿐이야 

열어줘 제발 다시 한번만 
두려움에 떨고 있어 
열어줘 제발 다시 한번만 
단 한번만이라도 
나 돌아갈래 어릴적 꿈에 
나 돌아갈래 그 곳으로 

- 윤도현 '박하사탕' 중에서 -


그런데 노래방에서 '박하사탕'을 열창하는 사람들은 많아도 영화 <박하사탕>을 본 사람은 많지 않다. '박하사탕'은 윤도현 씨가 이 영화를 보고 느끼고 말하고 싶었던 것들을 담아낸 노래다.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은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감정을 극한까지 끌어올려서 소재화한 영화다. 영화가 시작되면 한가로운 야유회 현장에 난데없이 영호(설경구)가 양복을 입은 채로 끼어드는데 이미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영호는 깽판을 부리다가 혼자 철길에 올라가서는 계속해서 정체모를 소리를 질러댄다. 달려오는 기차를 정면으로 막아설 때에야 그는, 처음으로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를 냄과 동시에 격렬하고 처절하게 포효한다. 


 나 다시 돌아갈래~~~~~~!!!!!!!


영화는 여러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는데, 시간적으로 역순행 구조다. 즉 주인공이 삶의 끝자락에서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친 후 그의 삶을 역추적하는 구성이다. 사흘 전, 몇 달 전, 몇 년 전, 군대 시절, 학생 시절.. 마지막 에피소드 '소풍'에 이르러서는 다시 처음의 야유회 장소다. 그때의 영호는 얼마나 순수했던가. 영화는 의도적으로 수미상관 구조를 취함으로써 주제의식을 돋보이게 한다. 이창동은 김기덕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작가주의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박하사탕>은 그런 그의 특색을 잘 드러내는 영화다. 영화를 보는 게 아니라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기차는 시간의 흐름을 상징한다. 영호는 그 시간의 흐름을 멈추고 되돌려 보내고 싶어서 기차를 막아서며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친 것이다. 에피소드 사이마다 기차가 달려가는 모습이 1인칭 시점에서 카메라에 잡힌다. 에피소드가 진행될수록 과거로 돌아가는 역순행 구조이므로 기차는 분명 반대로 달리고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 후반부에 이르자 '뒤로 뛰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기차가 역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박하사탕>은 잃어버린 순수함에 대한 처절한 갈망을 그린 영화다. 새하얀 박하사탕은 어린 시절의 순수를 상징한다. 박하사탕이 군화에 짓밟히는 장면에서 영호의 순수도 산산조각 나버렸다. 누가 그를 이렇게 만들었나? 암흑의 시대가 그의 인간성을 파괴했다. 더러운 사회가 그를 때 묻게 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주변의 탓으로 돌릴 수 있을까. 분명 영호는 '선택'할 수 있지 않았나. 영호가 스스로를 이렇게 만든 것은 아닐까. 



삶은 아름답다.


비루하고 처연한 인생의 밑바닥에서, 이미 순수를 잃어버린 영호는 이렇게 읊조린다. 삶은 아름답다. 가장 아름답지 않은 삶의 모습들을 보여주고는 감독이 이런 대사를 넣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럼에도 삶은 아름답다는 것인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그저 삶이 아름답다고 믿고 싶은 것은 아닌가.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영호는 강가와 철길을 보며 "이상해요. 여긴 내가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거든요. 근데 옛날에 한 번 와본 데 같아요."라고 말한다. 이런 대사들로 미루어 봤을 때, 이 영화의 역순행 구조는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라 혹시 정말 과거로 돌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영호의 간절한 소원이 이루어진 걸까? 각자 해석하기 나름이다. 다만 나는, 혹여나 정말 과거로 돌아갔다고 해도, 영호가 과연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몇몇 사건들을 피해갈 수는 있어도 결국 그는 또다시 사회에 물들고 순수함을 잃게 되지 않을까. 




모두가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만 애초에 우리는 절대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 지나간 일은 지나가버린 일이다. 혹여나 기적처럼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대체 무엇을 바꿀 수 있단 말인가. 시간의 흐름이라는 거대한 운명을 피해갈 수는 없다. 기차는 여전히 앞으로 나아간다. 어쩌면 인생은 절대 되돌릴 수 없어서, 돌아간다 해도 바뀌는 것 따윈 없어서, 순수함은 필연적으로 닳아 없어지기 마련이라서, 그래서 삶이 아름다운 것은 아닐까? 이런 잔인한 생각을 해본다. 


확실한 건 이 영화를 완전히 이해하기에 난 아직 어리다. 10년 뒤에는 이 영화가 나에게 어떻게 다가올지, 한편으로는 무섭다. 그래도 꼭 다시 보고 싶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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