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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 Feb 04. 2018

결국 우리는 희망을 원한다

영화 <원더>, 책 『종의 기원』

<원더> 스티븐 크보스키, 2017

<원더>를 봤다. 스티븐 크보스키 감독은 <월플라워>에 이어 이번에도 따뜻한 힐링 영화를 준비했다. 이 영화는 희귀한 병으로 인해 보기 흉한 외모를 지니고 태어난 아이의 성장기를 다뤘다. 주인공 '어기'는 지금까지 우주선 헬멧 속에 자신의 얼굴을 숨기고 집에서만 지냈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럴 수는 없으므로, 어기의 부모님은 아이를 학교에 보내기로 결심한다. 사실 여기까지만 들어도 대략적인 영화 줄거리는 예상이 간다. 특이한 외모를 가진 아이가 학교에서 놀림감이 되거나 따돌림을 당하는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다. 그 과정에서 아이는 상처받고 때로는 좌절할 것이다. 문제는 이 상처의 극복 과정을 어떻게 그릴 것이냐다. 그 안에서 어떻게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고 이 영화만의 개성을 확보하느냐가 성패를 좌우한다.


예전부터 외모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문제의식으로 삼은 영화는 많았다. 그러나 진정성 있는 고민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2015년 개봉한 영화 <뷰티 인사이드>는 겉모습이 아닌 그 사람의 내면을 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듯하다. 그러나 정작 이슈가 된 것은 화려한 남자 배우 라인업이었다. 영화 속 결정적인 순간에는 항상 젊고 잘생긴 남성이 등장했다. 결과적으로는 정반대의 메시지를 전달한 꼴이 돼버렸다. <원더>는 정면돌파를 택하여 성공했다. 외모지상주의를 극복하고 휴머니즘을 외치고자 하는 감독의 노력에서 진정성이 느껴졌다. 영화는 따스하고 희망적이지만, 그렇다고 비현실적이지는 않았다. '충분히 일어날 법한 일이지' 하고 고개를 끄덕일만한 이야기였다. 




어찌 보면 뻔한 스토리임에도 <원더>가 호평을 받고 있는 것은 이 영화가 '희망적'이기 때문이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CNN 앵커인 카민 갤로에 따르면 우리의 두뇌는 약자의 성공담을 좋아하도록 만들어졌다고 한다. 고난과 아픔을 딛고 불가능해 보이는 난관을 넘어서는 그런 이야기들은 이미 너무 많아서 때론 진부하고 유치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본질적으로 그런 이야기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베스트셀러 『최고의 설득』에 그는 이렇게 적었다.


스토리텔러는 어떤 일을 할까? 월트 디즈니에 따르면 스토리텔러는 "희망을 거듭, 거듭, 거듭 심어준다." 스토리텔러는 우리에게 희망을 나눠주며, 희망은 보편적인 욕구다. (366p)


카민 갤로는 누구나 희망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야기가 해피 엔딩인 것은 아니다. 비관과 절망, 슬픔으로 뒤덮인 작품 중에서도 사람들에게 인기를 끄는 훌륭한 영화나 소설이 많다. 이런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종의 기원』 정유정, 2016 

최근에 읽은 정유정의 『종의 기원』은 도저히 희망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소설이다.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 다윈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쓴 책이다. 다윈은 그의 저서 『종의 기원』에서 진화론을 제시하며 적자 생존의 메커니즘을 설명했다. 진화론에 따르면 인간도 생존을 위해 서로를 공격하고 죽이며 진화해 온 것이므로, 인간의 본성은 선보다는 악에 가깝다. 이 소설은 주인공 유진이 어머니의 죽음을 역추적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어두운 심연과 직면하게 되는 이야기다. 정유정은 이전 작품들(『7년의 밤』 등)에서도 꾸준히 인간의 '악'을 탐구했다. 그녀의 작품에서 진실은 악과 맞닿아 있다. 악은 죽지 않는다. 악은 끝까지 우리 주변을 배회한다. 그래서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나는 서늘한 기운과 함께 두려움을 느꼈다. 『종의 기원』이 지금까지도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소설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은 선과 악을 동시에 갖고 있어요. 선에 가깝게 서 있다가도 어느날 악의 진영에 다가설 수도 있어요.


정유정 작가의 인터뷰 기사를 읽으며 그 답을 생각해봤다. 인간의 내면에는 선과 악이 공존한다. <원더>는 인간의 선한 본성에 초점을 둔 영화라면, 『종의 기원』은 인간의 악한 본성을 깊이 있게 파고든 소설이다. 흔히 '선이 악과 싸워서 승리하는' 이야기를 희망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좀 더 넓은 관점에서 본다면 오직 그런 이야기만이 희망을 주는 것은 아니다. '희망적'이라는 것의 정의는 무엇인가? 나는 궁극적으로는 인간을 더 잘 이해하는 데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내면에 존재하는 '악'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솔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그에 올바르게 대처할 수 있고 맞서 싸울 수도 있다. 『종의 기원』은 비관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정유정의 소설도 <원더>만큼이나 희망적이다. 희망을 제시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정말로 이 세상이 망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창작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작가나 감독은 인간을 탐구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인간을 더 잘 이해하여 그로부터 희망을 찾고자 한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나눠주고 함께 좋은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 실제로 정유정 작가는 인터뷰에서 본인이 '굉장히 희망적인 소설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카민 갤로의 말은 틀리지 않다. 희망은 진부하거나 유치한 것이 아니다. 인류의 보편적인 욕구다. 결국 우리는 희망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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