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루 Feb 11. 2018

불륜 영화를 향한 시선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영화 <남과 여>

불륜을 다룬 영화는 정말 많다. 책도 마찬가지다. 소위 '명작'으로 불리는 고전 소설들에는 불륜이라는 소재가 단골로 등장한다. 명작은 다 불륜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불륜은 인간의 감정이 극단까지 치달을 수 있는 상황을 연출한다. 아마도 그래서 불륜이 자주 등장하는 것일 게다. 그렇다면 영화 속 불륜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 문제를 두고 사람들의 태도는 극명하게 갈린다. 


어떤 사람들은 불륜 영화를 극도로 혐오한다. 불륜을 소재로 한 영화 리뷰에는 '불륜 미화 극혐!', '내로남불', '주변의 피해자들이 불쌍하다' 등의 코멘트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자신의 연인 또는 배우자를 배신하는 일을 아름다운 사랑인 듯 포장하는 게 역겹다는 반응이다. 한편 불륜이라는 프레임만으로 영화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래퍼 스윙스는 2013년 자신의 대표곡 '불도저'에서 예술에 윤리라는 잣대를 들이대지 말라고 외쳤다. 이들은 영화를 윤리적으로 판단하려는 행위를 일종의 '선비질'로 보고 영화는 그저 영화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소재가 무엇이든 간에 훌륭한 영화는 훌륭하다는 것이다. 


내 입장은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개인적으로 불륜영화 자체를 싫어하지는 않는다. '불륜은 무조건 안 되는 거야! 그런 건 입에 담아서도 안 돼.'라는 식의 도덕적 담론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불륜은 누구에게나 인생의 어느 순간이든 발생할 수 있는 일이고(적어도 그런 유혹이 찾아올 수 있다), 지금도 수많은 불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게 인생이다. 나는 저들과는 다르다는 식으로 선을 긋는다면 그게 과연 설득력 있는 주장일까? 물론 그렇다고 불륜을 저질러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영화를 볼 때도 최소한의 도덕적 자각은 유지하려고 한다. 나는 스윙스의 노래를 즐겨 듣지만, 내가 무슨 예술가나 영화평론가는 아니지 않은가. 영화는 일단 개봉하고 나면 보는 사람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평범한 관객으로서 영화를 해석할 때 나의 가치관을 대입하는 것쯤은 괜찮지 않을까.


최근에 <밤의 해변에서 혼자>와 <남과 여>라는 영화를 봤다. 이 두 편의 영화는 내게 '불륜도 사랑일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 홍상수, 2017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실화 기반(?)의 영화다. 홍상수와 김민희의 불륜 스캔들이 터진 이후에 제작되었는데, 그들의 현 상황을 영화 안에서 거의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다. 이 영화는 절대 보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훌륭한 영화라고 극찬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칸 영화제 본선에도 올랐고 김민희는 이 영화로 베를린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나는 고민하다가 결국 찝찝한 마음을 안고 영화를 봤다. 


영화는 훌륭했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에서 보았던 홍상수의 영화적 재능을 한 번 더 감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도저히 높은 평점을 줄 수가 없었다. 자신들의 비도덕적 행위를 예술성으로 포장하려 한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극 중 홍상수 감독의 역할을 맡은 문성근 씨가 안톤 체호프의 『사랑에 관하여』의 한 구절을 읽어주는 장면이 있다. 


사랑할 때, 그리고 그 사랑에 대해서 생각할 때는 일상적인 의미에서의 행복이나 불행, 선한 행동인가 악한 행동인가라는 분별보다 더 고상한 것, 더 중요한 것에서 출발해야 하며, 아니라면 차라리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됐습니다.  - 『사랑에 관하여』안톤 체호프 


멋있는 말이다. 그러나 이 구절을 낭독함으로써 영화의 '불륜 미화'는 정점을 찍는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김민희와 홍상수를 피해자로, 그들을 욕하는 대중을 가해자로 프레이밍 한다. 우리끼리 사랑한다는데 왜 참견이냐고. 나는 불륜이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식의 당당함은 참기 어려웠다. 소재도 소재지만 이 영화가 씌우려는 프레임과 그들의 태도가 불편했다. 그래서 홍상수의 영화를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만은 도저히 지지할 수 없었다. 


<남과 여> 이윤기, 2015

그에 비해 <남과 여>는 조금 더 보편적인 불륜 문제를 다룬다. 영화 제목 그대로 한 남자(공유)와 한 여자(전도연)가 아이의 교육 문제로 핀란드에 갔다가 우연히 만난다. 둘은 서로에게 끌리지만 가정이 있기 때문에 계속 고민하고 망설인다.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복잡하고 처절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그린 영화다. 감독의 세심한 연출과 두 배우의 연기력이 영화를 살리는데 한몫했다. 


남녀가 왜 서로에게 끌렸는지, 왜 불륜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는지 영화는 직접적으로 말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어렴풋이 이해할 수는 있다. 극 중에서 공유와 전도연은 한 가정을, 그리고 자녀를 책임지고 있는 부모다. 둘은 직장도 다니면서 부모의 역할에 충실히 임한다. 그렇게 살다 보면 부모도 아이가 되어버리고 싶은 순간이 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누군가에게 돌봄 받고 싶은 유아기적 욕구. 이 영화에서 남녀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아이를 키우고 있기 때문에 더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로를 만난다면, 상대방에게 운명처럼 끌리게 되는 것 아닐까. 집에서는 의젓한 아빠이던 공유가 전도연에게 어린애처럼 장난을 치는 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남과 여>는 불륜을 이야기하지만 불륜을 미화하지 않는다. 남녀는 자신들이 지금 저질러선 안 되는 일을 저질러 버렸다는 것, 자신들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으며 끝이 정해져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비이성적으로 서로에게 끌리는 것이다. 마치 불나방처럼. 그래서 불륜에는 항상 자조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면이 있다. 불륜은 극단적 낭만성을 끌어들이지 않고는 유지될 수 없다. 이 영화는 그런 자기 파괴적 사랑의 미학을 잘 표현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엇갈리지만 내가 보기엔 충분히 현실적이다. 




불륜도 사랑일까? 


불륜은 사랑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불륜이라는 행위의 동기가 100% 순수한 사랑의 감정은 아닐 것이다. 불순물처럼 좋지 않은 감정들이 복잡하게 섞여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테면 소유욕, 반항심, 일탈 욕구, 우월감, 인정 욕구 등이다. 확실한 건 불륜의 끝은 파국이라는 사실이다.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에서 보여주듯, 잘못된 관계는 낭만적이고 짜릿할 수 있지만 결국 인간을 남김없이 파괴한다. 


나는 어떤 영화가 말하려는 것이 타당하든 타당하지 않든, 무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영화라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와 <남과 여> 모두 내게 의미 있는 영화였다. 불륜을 다룬 영화를 본다고 해서 불륜을 옹호하는 것도 아니고 불륜을 저지르게 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자신이 해석하는 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결국 우리는 희망을 원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