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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노성 Oct 12. 2015

에밀 졸라 원작의 '사랑을 그대품안에'

에밀 졸라의 여인들의 행복백화점이 '사랑을 그대품안에'의 원작이라는 사실

아버지가 로밍이 안됀다는 이유로 2G폰을 버리고 드.디.어 스마트폰을 사셨다. 아버지는 스마트폰 거부주의자셨다. 

뭐 그리 신기하신지 몇시간동안 사용법을 가르쳐드리느라 내 할 일은 하나도 못했다. 자본주의의 신기술은 보수주의의 마지막 보루마저 이렇게 삼켜버린 것이다. 




# 변화는 즐거운건가 두려운건가 

파리의 상징을 넘어 이제는 세계인류의 상징물이 되어버린 에펠탑. 그 위대한 에펠탑이 세워지기도 6년전인 1883년, 프랑스 파리에 세계 최초의 백화점이 생겼다. 이름하여 '여인들의 행복백화점'이란다. 이 백화점은 장인정신으로 물들어있던 명품도시 파리를 순식간에 집어 삼킨다. 그리하여 주변 소상공인과 전통시장은 전멸하게 된다. 대형마트로 인해 고통받는 요즘의 전통시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1883년으로 돌아가서 당시의 상황을 살짝 엿보자. 


- 주인공 드니즈(20살)는 자신의 두 남동생과 생 라자르 역에서부터 걸어왔다. 셰르부르에서 기차를 타고 3등칸의 딱딱한 나무 의자에서 밤을 지새운 후 파리에 막 도착한 참이었다. 드니즈는 한 손으로 어린 동생 페페(5살)를 꼭 잡고 있었고, 장(16살)이 그 뒤를 따라왔다. 기차 여행으로 인해 지칠 대로 지친 세 남매는 거대한 파리 한가운데서 헤매는 동안 겁을 잔뜩 집어먹을 채 높다란 건물들을 올려다보느라 머리가 빙빙 돌 지경이었다. 

"오! 세상에. 저것 좀 봐, 장!"

아버지 장례식 때 입었던 낡은 검은색 옷을 수선해 입은 그들은 서로 몸을 꼭 붙인 채 그 자리에 얼어붙은 것처럼 서 있었다. 

"저건." 드니즈는 너무 놀란 나머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백화점이잖아!"


그들의 눈앞에 있는 것은 미쇼디에르 가와 뇌브생토귀스탱 가가 만나는 곳에 위치한 거대한 백화점이었다. 최신 유행의 다양한 천들과 옷들을 진열해놓은 쇼윈도는 부드럽고 희뿌연 10월의 대기 속에서 생생하고 화려한 색깔들로 빛나고 있었다.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이라." 동생 장이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 말했다.

 

"백화점 이름이 정말 근사하지 않아? 이름만 보고도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오겠는걸!"


드니즈는 정문 앞에 놓인 진열대를 바라보느라 넋을 잃고 있었다. 건물 밖 보도 위에까지 전시돼 있는 값싼 물건들이 산사태라도 일으키고 있는 듯 보였다. 수북이 쌓여 있는 미끼 상품들이 지나가는 행인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 

 





130년 전 백화점의 탄생을 다룬 이 소설이  요즘의 대형마트로 인해 불거진 전통시장 살리기 운동이 연상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파리에 이 백화점이 들어서는 순간 그 지역 소상공인들은 전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앞서 등장한 주인공 드니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작은 아버지 보뒤가 운영하는 작은 부띠크 '전통 엘뵈뉘'에 취직하고자 파리에 상경한다. 하지만 '여인들의 행복백화점' 때문에 동네상권은 싸그리 전멸하고 작은 아버지도 파산 직전에 이른다. 

 

드니즈를 도와주던 부라영감 역시 백화점의 확장을 막고자 알박이 해둔 부동산이 헐값에 넘어가버리게 된다. 보뒤와 부라 영감은 보수주의의 마지막 보루를 상징한다. 마치 우리 아버지가 스마트폰을 사시게 된 것처럼, 기성세대 누구도 백화점이라는 새로운 트랜드에 저항할 수 없고 하나 둘씩 사라져간다. 이 책은 무한 경쟁시대의 자본주의 논리의 냉혹함을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모두가 백화점을 적으로 생각하고 등을 돌리는 시기에 젊은 신세대 여성인 드니즈는 오히려 여인들의 행복백화점에 취직을 한다. 그녀가 보기에 백화점이라는 트랜드는 이미 대세라고 판단한 것이다. 만약 소상인들이 합심해서 여인들의 행복백화점을 문닫게 만든다 해도 또다른 백화점이 생길 것이다. 이것이 새로운 트랜드의 무서움이다. 


이는 마치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음반시장이 전멸한 것, 아이폰이 등장하면서 모토로라와 노키아가 없어진 것, 아마존, 예스24 등의 온라인 서점이 등장하면서 동네서점이 사라지는 현상과 일맥상통한다. 그런 시대의 흐름은 거스릴 수 없는 것이다. 


- 드니즈는 로비노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차분한 어조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했다. 상업의 필연적인 진화와 새로운 시대의 요구, 백화점들의 거대한 상권, 그 모든 것으로 인해 대중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증가하는 사실 등에 관한 이야기를 논리적으로 펼쳐나갔다.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다문 보뒤는 정신적으로 긴장한 모습이 완연한 채 드니즈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어쨋거나 소비자들에게 유리하잖아요."


물론 책속에서의 보수주의자들은 호락호락하게 물러나지 않는다. 부라영감은 백화점의 저가 우산을 겨냥해 나무 손잡이를 손으로 직접 제작한 고급우산을 만들어 정면도전한다. 작은 아버지 보뒤도 시골집을 처분한 자금을 쏟아부어 고급 원단을 제작하여 백화점에 맞선다. 


이에 백화점 사장 무레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대형공장을 통해 싸게 만들어야 많이 팔수 있고, 많이 팔아야 싸게 만들수 있다."


결국 소상인공인들의 도전은 실패로 끝나고 이들은 파산을 맞이하게 된다. 


책을 읽어가면서 문득 떠오르는 오래된 드라마가 있다. 



백화점사장인 차인표와 점원인 신애라와의 신데렐라같은 사랑. 

'여인들의 행복백화점'은 에밀 졸라의 루공-마카르 총서 중에서 유일하게 해피엔딩이다. 백화점 사장인 무레와 종업원인 드니즈와의 사랑이 바로 그것이다. 최근에는 영국에서 이 여인들의 행복백화점을 '파라다이스'라는 드라마로 리메이크 했다고 한다.  루공-마카르 총서는 뒤에서 다시 다루기로 한다. 




주인공 드니즈(신애라)는 정직하고 솔찍한 아가씨다. 그러나 동료 직원들의 텃새에 매번 눈물로 밤을 지샌다. 그러던 어느날 남자와 바람이 낫다는 누명을 쓰고 보수적인 백화점에서 쫒겨나게 된다. 지금이나 그 당시나 실직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에 드니즈의 해고는 너무나도 안타깝다. 친구인 폴린은 스폰서나 남자친구를 만들어서 쉽게 살기를 권하지만 드니즈는 자신이 없다. 동생이 둘씩이나 달렸기때문에 그런 생활은 더욱이 불가능한 것이다. 



우여곡절끝에 백화점에 복직하게 되는 드니즈. 여전히 백화점은 그녀에게 암투가 난무하는 정글같은 곳이다. 그 순간 무레(차인표)의 존재가 다가온다. 무레는 그녀에게 하룻밤을 청한다. 하지만 드니즈는 거절하게 된다. 백화점을 통해 여인들을 정복하는 무레로서는 생전 처음으로 거절 당하는 것이다. 이로인해 무레는 가질 수 없는 드니즈에게 집착하게 된다. 



이 책은 '사랑을 그대 품안에' 뿐만아니라 '파리의 연인'도 연상시킨다. 가난한 여인을 구원해주는 백마탄 왕자의 스토리는 세대를 넘나들어 사랑 받을 만큼 언제나 매력적인 모양이다. 이 작품을 읽어보지 않고는 신데렐라 스토리를 다 안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특히 마지막 14장에서는 하룻동안 무레의 심경변화가 극적으로 펼쳐진다. 무레는 귀족 부인의 도둑질을 현장에서 잡아 내면서 드니즈라는 여인의 순결성을 되짚어보게 된다.  그리고는 작별인사를 하러온 드니즈에게 청혼을 하게 된다. 



# 루공-마카르 총서에 대하여

에밀 졸라는 오노레 드 발자크에 영향을 받아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를 글로 기록하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핵심은 유전이다. 귀족가문인 루공집안이 별볼릴 없는 마카르 집안과 결합하는 유전적인 부조화가 5세대에 걸쳐 나타나는 영향을 기록하겠다는 것이다. 



루공-마카르 총서는 총 2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내에는 극히  일부분만 번역출간(볼드 부분)되어 있다. 


<루공 마카르 총서(Les Rougon-Macquart)>

1. 루공 가의 운명(La Fortune des Rougon, 1871)

2. 이권쟁탈전(La Curée, 1871–72)

3. 파리의 뱃 속(Le Ventre de Paris, 1873)

4. 플라상스의 정복(La Conquête de Plassans, 1874)

5. 무레 사제의 과오(La Faute de l'Abbé Mouret, 1875)

6. 외젠 루공 각하(Son Excellence Eugène Rougon, 1876)

7. 목로주점(L'Assommoir, 1877)

8. 사랑의 한 페이지(Une Page d'amour, 1878)

9. 나나(Nana, 1880)

10. 살림(Pot-Bouille, 1882)

11.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Au Bonheur des Dames, 1883)

12. 삶의 기쁨(La Joie de vivre, 1884)

13. 제르미날(Germinal, 1885)

14. 작품(L'Œuvre, 1886)

15. 대지(La Terre, 1887)

16. 꿈(Le Rêve, 1888)

17. 인간짐승(La Bête humaine, 1890)

18. 돈(L'Argent, 1891)

19. 패주(La Débâcle, 1892)

20. 파스칼 박사(Le Docteur Pascal, 1893)  



 


에밀 졸라의 대표작은 뭐니뭐니해도 '목로주점'이다. 그러나 그의 천재성을 엿보려면 반드시 이 책 '여인들의 행복백화점'을 보아야 할 것이다. 백색 대전시회라는 이벤트 행사를 묘사하는 장면은 가히 환상적이다. 또한 매출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무레가 판매 동선을 교묘히 혼란시키는 부분은 요즘의 백화점들이 취하는 전략과 다를바가 없어서 놀랍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를 꼽으라면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도스트예프스키를 꼽는다. 그러나 만약 루공-마카르 총서가 완역된다면 좋아하는 작가를 놓고 고민하게 될지 모르겠다. '나나'와 '제르미날'을 읽으면서 작가의 기록정신과 사회참여정신에 놀란 바 있다. 이 작품도 철저한 고증과 자료조사를 통해서 완성되었기에 하나의 마케팅 서적으로 보아도 손색이 없다. 


영화 '박쥐'의 원작이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켕'이라는 사실은 너무나도 잘 알려져있다. 그만큼 요즘에도 활발히 재해석되고 있는 에밀 졸라. 읽을 수록 감동적인 이 천재가 내다보고 준비하고자 하던 미래를 우리는 아직 실감조차 못하며 변화에 이끌려가면서 살고 있지는 않은가 반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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