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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Oct 22. 2019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이처럼 매화를 닮은 이야기를 나는 아직 들어보지 못 했다

“나는 편애에 집착하는 인간이라서, 존경하는 ‘선생님’의 존재에 가장 크게 성장한다.”

인간에 대한 놀라운 존경이 내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가 있다. 내 인생의 ‘선생님’께 감사할 때다.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생님’이란 얼마나 거대한 존재인가. 학생 때 처음으로 미술사의 눈을 열어 주셨고, 책과 그림을 직접 권해 주셨던 J선생님과, 눈물 가득한 혁명가 윤동주의 삶을 그대로 살아가시는 K선생님, 재미없는 미술교육과정안에 교육학 이론이 담겨 있음을 체계 있게 분석하고 가르쳐 주신 능력자 L선생님, 내가 툭툭 생각나는 대로 던지던 단문을 붙잡아 구체적인 그림과 글로 풀어쓰라고 강권해 주신 K오라버니 등. 나를 지금의 ‘나’로 살아가게 해 주신 흠모할 만한 스승을 하나 둘 모시는 것이 인생의 큰 기쁨이다. 처음 그분들께 반한 것은 역시 내 쪽이었다. 한 번이라도 더 눈에 띄기 위해 시간을 다투어 강의를 신청하고, 맨 앞자리에 앉아 열심히 필기했다. 과제도 과한 성실로 제출하고 피드백을 부탁드렸다. 감사하게도 대개의 ‘선생님’께서는 그런 나를 반갑게 받아들여 애제자로 삼아 주셨다. 


 선생님을 흠모하여 닮고픈 학생을 생각하면 스승을 지극히 사랑한 조희룡이 생각난다. 스승 김정희를 지극히 사모하였던 매화 광인 조희룡, 그는 진심으로 스승을 존경하였고 김정희의 섭섭한 평가에도 사모함을 끝내 그치지 않았던 겸손하고 충직한 사람이었다. 조희룡이 그린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는 나를 가장 매혹한 동양화의 그림이다. 

조희룡(趙熙龍),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 담채, 지본채색화(總本科多色), 454×1060cm 간송미술관

 우봉 조희룡又峯 趙熙龍, 1789~1866은 조선 말기의 서화가로서 시詩, 서書, 화畫에 모두 능한 삼절三絶이었다.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던, 서예가, 금석학자, 고증학자, 화가, 노론 북학파 실학자였던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는 그에게 가장 흠모할 만한 사람이었고, 이내 조희룡은 그의 충실한 사람이 되었다. 화가는 소치 허련, 고람 전기 등으로 대표되는 김정희의 추종자 중 가장 나이가 많았고 인품도 높아 단연 추사파의 중심이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에 얽힌 에피소드에서 볼 수 있듯이 김정희의 유배 생활 가운데 충정을 지킨 제자가 한둘은 아니었겠지만, 「세한도」의 수신자인 제자 이상적 뿐 아니라 조희룡도 곧은 충정을 지켰다. 심지어 조희룡은 1851년, 김정희의 가장 가까운 이로 연좌되어 신안에서 삼 년간 유배 생활을 해야 했다. 


 추사는 예서체에 기반을 둔 추사체를 완성시켰고 조희룡은 바로 그 추사체에 반했다. 추사에게 조금 부족했던 조형적인 재능은 조희룡에게 승하였다. 그는 추사체를 자신의 개성대로 소화했고, 조희룡의 특징인 감각적이고 생동감이 스민 새로운 글씨를 만들었다. 우봉은 서화동원書畵同源, 조맹부(趙孟頫)가 강조한 것으로 글씨와 그림은 본질적으로 같다는 뜻을 철저히 중시하면서도 감각적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았다.


 조희룡은 비록 중인 출신이었으나 그의 태도는 선비 중의 선비와 같았다. 그는 사군자 중에 매화와 난초를 잘 그렸고 그중에서도 매화 하나만큼은 광인처럼 좋아했다. 친구 유최진처럼 실제 매화 숲 속에 집을 짓고 살 형편은 못 되었으나 끈질기게 매화처럼 사는 꿈을 꾸었고, 제 이름 앞에 ‘매화두타梅花頭陀’라는 호를 붙였다. 우봉 조희룡의 자서전과 같은 책 「석우망년록石友忘年錄」을 펼쳐보자. “나는 매화에 편벽(偏僻)이 있다. 스스로 매화대병(梅花大屛)을 그려 침실에 두르고, 벼루는 매화를 읊은 시가 새겨져 있는 매화시경연(梅花詩境硯)을 사용하고, 먹은 매화서옥장연(梅花書屋藏煙)을 사용한다. 매화백영(梅花百詠)을 본떠 시를 짓고 내가 거처하는 곳에 ‘매화백영루(梅花百詠樓)’라는 편액을 단 것은 매화를 사랑하는 내 뜻에 흔쾌히 마땅한 것이지 갑자기 이룬 것은 아니다. 시를 읊다가 목이 타면 매화편차(梅花片茶)를 달여 마셨다.”(김봉규, 『조선 선비들의 행복 콘서트』, 행복한미래, 2014)고 화가는 기록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이전과 같지 아니하리라”고 했던가, 이렇게 매화와 불타는 사랑에 빠진 그가 매화의 신비로 들어가고, 그 매화미의 걸작을 남기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렇게 그린 것이 「매화서옥도」나 「홍매대련」 등의 매화 걸작이다. 


 그러나 김정희는 제자가 그린 ‘걸작’을 기꺼워하지 않았다. 형태가 아름답고 그림 기량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잘 그리는 게 나쁘다니 그게 무슨 소리? 요즘이라면 황당한 소리겠지만 그 때는 그게 당연했다. 그림의 세력이 섬세한 전문 화가보다는 선비의 정신을 중시하는 문인화에 있었기 때문. ‘문자향文字香, 문자의 향기과 서권기書券氣,서책의 기운’가 조희룡의 그림에는 없다며, 그의 그림에 지성의 품격이 덜함을 아쉬워했다. 그러나 조희룡은 그 질책을 공손히 받아들이면서도 조심스레 본인의 화론을 정립해간다. “글씨와 그림(書畵)은 손재주(手藝)이므로 손끝에 있는 것이지 가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재주가 없으면 비록 총명한 사람이 종신토록 배워도 잘 할 수 없다.” (조희룡 『석우망년록(石友忘年錄)』) (정옥자, 『조선 후기 지성사』, 일지사, 1991, P.287)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자. 어둠이 내렸다. 거대한 매화나무가 집을 덮듯이 꿈틀거리고 있다. 검은 먹의 강한 번짐으로 만들어진 농담 가운데 백색의 물감이 점점이 리듬감 있게 찍혀 있다. 바위가 가득한 매화의 장소에 작은 집 하나가 숨어 있듯 세워져 있다. 이 집의 둥근 창문은 유난히도 크고 그 가운데 한 선비가 화병에 꽂힌 매화 가지를 바라보고 있다. 집 안과 밖은 그저 가득한 매화로 연결되어 있다. 이 매화가 흐드러진 공간에서 선비 하나는 매화가 되어 있다. 


 조희룡의 「매화서옥도」에서 보이는 특징은, 이전의 단정하고 절제된 매화도의 스테레오타입을 벗어나 화려하고 풍성한 아름다움의 매화 스타일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붓끝으로 둥글게 댓 개의 꽃잎만 쳐 내고 약한 농담으로 쳐 내어 여백의 공간감을 강조하던 매화의 이전 표현과는 다르다. 조희룡의 매화도는 무한한 여백의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는다. 거칠게 흩뿌린 붓질은 먹의 오채五彩가 가진 색채와 격정을 내뿜는다. 종이 그 자체의 여백은 최소한을 차지하고 있다. 담백한 아름다움보다는 매화가 가진 물성의 아름다움에 접근하는 것처럼 보인다. 


 조희룡의 광적인 매화 사랑을 몰랐다면 이 그림은 매화로 아내를 삼고, 주위를 매화 숲으로 가꾸었다는 송나라 시인 임포의 고사를 그린 것으로 알 수 있다. 그러나 「매화서옥도」가 누구를 그린 것인지는 자명하다. 이 그림은 우봉 조희룡의 인생이 그대로 구현된 자화상이나 다름없다. 책상 위 가득한 책들과 청아한 백자 화병이 취향 참 고상하다. 일찍이 자신은 “천하의 책을 모두 읽지 못했다.”라고 한탄했던 조희룡임에도 그림에서만큼은 책을 쌓아 놓았다. 열망은 계산으로 가라앉지 않는다. 일생 불가능할 것처럼 보일지라도 꿈만큼은 꿀 수 있다. 김정희는 늘 말했다. “가슴속에 만권(萬卷)의 책(冊)이 들어 있어야 그것이 흘러넘쳐서 그림과 글씨가 된다”라고. 우봉 역시 흠모하던 스승처럼 가슴속에 만 권의 책을 쌓고 싶었던 것이다. 


 스승 김정희도 매화도, 조희룡에게는 일 방향의 사랑이었을 수도 있다. 주었던 사랑만큼은 늘 받을 수 없어 슬픈 마음이었을 수도 있다. 그래도 조희룡은 스승의 글씨를 따라 쓰고 그의 가르침을 가슴에 품고 행하였다. 고결한 매화를 사랑하고 닮고 싶어 곁에 머물렀다. 높은 곳에 머문 대상을 끝없이 흠모했을 때 조희룡의 삶은 다른 높은 경지로 떠오른다. 조희룡은 조선 문인화의 새로운 문을 열었다. 그의 수예手藝 정신은 김정희가 강조했던 정신성에 가려 있던 새로운 세계였다. 후대에 이르러 조희룡은 감각적 풍취를 가진 문인화의 개척자로 평가받는다.  

 존경하는 선생님을 만났을 때 내 삶의 계단을 하나씩 올랐던 기억이 있다. 선생님이 즐기시던 것을 홀리듯 따라해 보았다. 이제 머리를 쥐어짜며 인문고전을 읽는다. 귀한 책은 표지를 비닐로 포장한다. 중요한 문장마다 ‘개념’은 파랑, ‘에피소드’는 주황, ‘표현’은 노랑, ‘배경’은 초록, 강의 인용은 보라. 색깔별로 의미를 구분하여 포스트잇을 붙인다. 당나라 한시 뿐 아니라 일본 와카도 찾아 읽는다. 일 년에 한 번 부활절에는 말러의 부활 교향곡을 꼭 듣는다. 서명은 꼭 정자正字로 한다. 나의 세계는 선생님의 모습만큼 달라진다. 고상한 취향을 하나둘씩 더 가지게 되었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씩 바뀌었다. 나는 편애에 집착하는 인간이라서, 존경하는 ‘선생님’의 존재에 가장 크게 성장한다. 날 닮은 조희룡도 그런 연하고 소심한 사람, 그러나 끈질긴 사람이었으리라. 

 조희룡은 매화 같은 사람이었다. 높은 곳에 있는 스승과 가까운 마음으로 가닿지 않아도, 스승 때문에 어려움을 겪어도 그 유배의 시간 동안 깊이 있는 작품 활동을 하고 꾸준히 집필 해 갔던 고결한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승에 대한 사모함은 끝내 그치지 않았던 겸손하고 충직한 사람. 매화는 고결高潔과 지조志操를 상징한다. 조희룡만큼 매화를 닮은 이야기를 나는 아직 들어보지 못 했다. 



▥ 참고문헌

유홍준명작순례:옛 그림과 글씨를 보는 눈눌와, 2013

김봉규조선 선비들의 행복 콘서트행복한미래, 2014

정옥자조선 후기 지성사일지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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