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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Oct 22. 2019

‘다음에 또 만나자’는 언약

정말로 인연은  ‘한 장면의’ 꿈같다.

“마음마저도 늙어가고 언젠가 사멸한다”


만남은 헤어짐의 시작이고 이는 사람과의 만남뿐 아니라 모든 사물과 사람의 마주침 안에서 이루어진다. 모든 것은 시작과 끝의 울타리 안에 머물러, 세상 모든 것에는 수명이 있다. 마음마저도 늙어가고 언젠가 사멸한다. 이 중 나를 가장 안타깝게 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과의 인연이다. 


  내가 소망해도 떠나가 버린 것들, 가까이 하고 싶어도 그리할 수 없었던 사람. 순간 멀어져 간 젊은 얼굴을 떠올린다. 희미해지고 사라져버린 인연들을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이야기할 때면 늘 마음이 촉촉해진다. 한때, 혹은 오랫동안 소중하게 여겼으나 아련하게 지워진 사람들이 내게도 있었다. 


 누군가는 말한다, “그렇게 사라져가는 인연은 마땅히 더욱 ‘아름답다’.”라고. 인연에 끝이 없다면 우리는 매일 저녁 술자리와 저녁 약속으로 생활이 되지 않을 테니. 실은 이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밥 한번 먹자”라는 말을 100%의 진심으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러지는 인연이더라도, 헤어질 때 “다음에 또 만나자”로 기약한 인연 쪽을 선택하고 싶다. 그 이의 말에 “우리 다음에 밥 한번 먹자.”가 아니라, “우리 돌아오는 토요일 11시반에 정자역에서 브런치 먹자.”로 구체적으로 약조하는 일. 그리고 이 약속이 깨어져 인연이 스러졌더라도,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을 굳게 믿는 인연 쪽이 더 ‘강인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응답하려 한다. 


 빈 의자를 보면 사람이 인연을 맺는 모습 같다. 누군가가 잠시 앉음으로 관계는 시작되고 머묾으로 사이는 지속된다. 가끔 볼 때마다 오래오래 텅 빈 의자를 보면 가슴이 찡해온다. 쓸쓸해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 외롭디 외로운 두 개의 의자가 있다. 아돌프 폰 멘첼(Adolph von Menzel)의 그림, 「발코니 룸(The Balcony Room, 1845)」을 보라. 벽면을 위로 꽉 채운 창문을 통과하는 빛이 가득하다. 흰 커튼에 드리운 그림자 때문에 이야기는 풍부해지고 빛은 말을 건넨다. 

Adolph von Menzel, 「The Balcony Room」 oil on canvas, 58×47cm, 1845, Alte Nationalgalerie

 아돌프 폰 멘첼Adolph von Menzel, 1815~1905은 독일 출신으로 베를린에서 이름을 떨쳤다.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와 더불어 독일의 가장 뛰어난 당대 예술가라고 하면 단연 멘첼이었다. 교사 일을 겸하던 석판화공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일찍이 아버지를 잃었다. 1832년, 단지 열일곱에 공방을 물려받아야 했던 그는 판화가로서의 자기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1833년, 멘첼은 베를린 아카데미에 등록한다. 비록 반년뿐인 아카데미 교습이었지만 멘첼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대리석 조각 드로잉은 화가로서의 기본기를 향상시켰을 뿐 아니라 나중에 꼭 역사화를 그려봐야겠다는 열망도 갖게 했다. 화가는 석판화 뿐 아니라 에칭에도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 괴테의 시집에 들어갈 판화를 통해 삽화가로서 이름을 얻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역사가 프란츠 쿠글러Franz Kugler의 『프리드리히 대왕독일 통일 전, 빌헬름 2세와 비스마르크가 활약할 기반을 만든 왕전』에 400점의 목판 삽화를 실어 유명해졌다. 얼마나 대단한 작업이었던지 2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소모했다고 한다. 멘첼은 이즈음 독학으로 유화를 습득하며 작품에 열중하기도 했다. 


 그는 몸에 큰 열등감이 있었다. 멘첼의 키는 137센티미터에 불과했다. 『만들어진 승리자들』의 저자 볼프 슈나이더의 말을 빌리면, 이 화가는 병약한 몸에 물뇌증 환자처럼 머리가 컸다고 한다. 작은 키와 큰 머리는 예나 지금이나 황금비율의 신체가 아니다. 건강 역시 내내 나빴다. 아름답지도 않고 연약하기만 한 육체는 그를 괴롭혔고 삶의 기쁨에 도전하기보다 겁을 내 한 발 물러서곤 했다. 슬픔이 가득한 그에게 다가오는 여자는 적었고 그 역시 사랑을 믿지 않아 외롭게 살았다. 

 그는 외로움을 잊기 위해 죽도록 노력했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그림뿐이었다. 그리고 또 그렸다. 인체를 연구했다. 어떻게 그려야 사람을 사람답게 그릴 수 있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고독을 견딜 유일한 방법이었다.   

 1853년, 멘첼은 로열 아카데미의 회원이 되었고 이후 교수로 초청받는다. 곧이어 1855년, 화가는 프랑스 파리로 가서 구스타브 쿠르베를 만났다. 이 제멋대로고 기세고 자아도취에 가득한 사실주의의 선구자는 선배를 넘어서 스타와 같았다. 멘첼이 오매불망 매달린 역사화가 아니라 ‘현실’, 「발코니 룸」은 쿠르베의 영향을 받아 선택한 소재라고 해도 무방하다. 화가는 이후로도 유럽을 여행하면서 더욱 일상과 주변 풍경에 따뜻한 시선을 두었고, 빛의 변화에 관심을 가졌다. 「발코니 룸」을 보라, 강렬한 빛과 더불어 흔들리는 엷은 커튼과 공기가 떨고 있지 않은가, 빛이 전율하는 광경을 보는 나 역시 몸을 떨게 된다. 당연히 멘첼은 인상파에게 영향을 준 풍경화가 중 하나라는 것이 미술사의 평가다. 역시 드로잉에 목숨을 걸었던 에드가르 드가는 멘첼을 존경해 여러 번의 모작을 했고, 그를 ‘살아있는 최고사로 추대되었다. 


 1898년, 그는 독일 정부로부터 검독수리 훈장을 받았으며 귀족 작위를 받았다. 석판화공(master) 멘첼로 시작했던 그의 인생에 ‘폰(von)’의 영광이 더했다. ‘폰 멘첼의 거장(the greatest living master)’이라고 불렀다. 노년에는 독일 베를린 대학에서 명예박’이 된 이후로도 그는 승승장구했다. 그의 명성은 전 유럽에 퍼져 프랑스 아카데미 드 보자르와 영국의 로열 아카데미 회원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어깨를 두고 돌아선 두 개의 의자가 의미심장하다. 따뜻하고 잔잔한 수다를 듣느라 누군가는 창가에 의자를 두고 앉아 빛을 받았을 것이며, 누군가는 의자를 돌려 눈부신 빛을 피했을 것이다. 누군가 일어선 모습 그대로 흐트러진 의자는 앉았다 간 이의 흔적을 나타낸다. 보풀이 일고 튿어진 의자 커버는 너무 많은 인연의 무게로 힘겨워한다. 켜켜이 쌓인 먼지는 오랫동안 사랑받지 못했음을 슬퍼한다. 정말로 인연은 이 그림 같다, 애잔하니 아름답다. ‘한 장면의’ 꿈같다. 


이상하고, 우연으로 엮인 인연은 이상하고, 우연인 채로 놔두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훼손시키면 안 될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일생에 한 번쯤, 떠올리면 꿈같은 일들이 있어도 좋을 거라고. 

_진연주, 『코케인』, 문학동네, 2015, P.49 


 큰 행사를 마친 후 흐트러진 의자를 정리하다가 진연주의 문장을 떠올렸다. 모든 우연은 신비롭다. 기묘한 이야기를 만든다는 면에서, 통제할 수 없다는 면에서 꿈같다. 가끔 생각한다. ‘다시 한 번쯤 만날 수 있을까?’ ‘어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건가?’ 혹은 결심한다. ‘언젠가 꼭 다시 만나고야 말겠어.’ 의자는 이전 사용자의 손길에 따라 움직이고 흐트러진다. 새로운 사용자를 위해 반듯하게 정돈된다. 오늘 편안히 머물다 간 그 사람이 내일 또다시 찾아올지 아닐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내일을 위해, 내일의 바로 그 사람을 위해, 우리는 그가 다시 올 것을 굳게 확신하며, 그가 꼭 찾아오기를, 혹은 내가 그를 꼭 찾아내기를 소망하며 정갈하게 의자를 정리하는 것이 아니던가. 


 보아라, 너는 잊었어도 나만큼은 잊지 않으리니. 세어라, 가슴에 몇 개의 기약을 품고 있는가. 그리고 또 그리워하는 만큼 보이지 않는 끈이 잔잔히 진동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맺은 언약의 위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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