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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Oct 22. 2019

누구나 죽음과 맞서 싸운다

죽음과 같은 고통에 매몰되었던 순간

“몸으로 겪어본 사람들만이 ‘먼저’ 알아보는 슬픔이 분명 존재하는 것이다.”

‘타이밍’과 ‘타이밍’이 맞아떨어지면서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이 있다. 2017년의 부활절復活節이 꼭 그랬다. 기나긴 사순四旬과 고난주간의 끝 날에 광화문에서 노란 리본의 아픔을 바라보다 돌아섰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맞은 부활주일의 새벽에, 검은 책표지를 무심히 넘기다 읽어버린 슬픔에 아파했다. 


 김응교 시인은 『그늘』에서 말한다. “누구나 죽음에 맞서서 싸운다. 죽음 앞에서 인간은 처연한 연대의식을 갖는다. 그래서 인간은 죽음을 앞두고 하나가 될 수 있다. 누구나 죽음으로 연대하고 용서할 수 있다. 그래서 적장과 원수의 죽음에도 예의를 차리는 것이다.”(새물결플러스, 2012) 다른 날 같으면 밑줄을 긋고 포스트잇을 붙인 채 뒷장으로 넘길 수 있는 문장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은 다르다. 바로 이 시간에는 너무나 다르다. “누구나 죽음에 맞서서 싸운다.”는 말이 부활절이라는 이름을 한 하루 앞에 너무 인간적이어서 눈물이 났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죽음이라는 절대 강함 앞에서 일단 멈추어 서게 된다. 죽음의 단절을 두려워하는 이는 공포를 느끼고, 죽음의 강함에라도 기대고 싶은 이는 죽음에 매혹된다. 어느 쪽이든 인간은 죽음 앞에서 그저 희희낙락할 수 없다. 죽음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고통 앞에 자주 서야 하는 이라면 아직도 상처가 깊은 사람이다. 핏자국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양지가 아니라 그늘 안에서 피를 닦아내고 싸매기를 바라므로. 죽음처럼 고통스러운 이들은 언제나 빛 받는 정면이 아닌 그늘을 선택하기에. 


 죽음과도 같이 짙은 그늘을 생각하면 야코프 쉬카네더의 그림이 떠오른다. 화가는 손대는 그림 어디에나 어두운 안개 같은 슬픔을 가득 채워 놓았고, 상처를 감출 수 있는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그 안에 머문 인간들은 각자의 고통을 간신히 감춘다. 


 체코의 화가 야코프 쉬카네더Jakub Schikaneder, 1855~1924만큼 죽음과 슬픔의 그늘에 머물러야 했던 화가가 또 있을까. 화가는 지독히도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났다. 가난함이 가져오는 고통과 슬픔은 자연스레 인간을 사랑과 기쁨에서 멀어지게 한다. 쉬카네더는 그를 지지하는 가족 덕에 미술 수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고 하지만, 자신을 열심히 서포트하는 가족의 모습조차도 그에게는 두렵고 비참하고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가난한 사람이 꿈을 갖는다는 것은 끝없이 자기 확신과 싸워야 하는 날들이다. ‘내가 정말 성공할 수 있기는 한 걸까?’ ‘성공도 못 할 거면서 나이만 먹고 시간만 낭비하는 게 아닐까’ ‘차라리 이 시간에 다른 일을 더 해서 돈을 버는 게 낫지 않을까?’ ‘이러다가 나를 도와주는 가족들만 고생시키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들과 싸워야 한다. 가능성이 조금씩 보이더라도 불안하다. 확실히 성공 궤도에 오르기까지, 가난한 사람에게 기약 없는 시간은 죽음처럼 공포스럽다.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더라도 불행의 조짐이 보이면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 고통의 시절이 얼마나 끔찍한지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아서, 혹시나 이전보다 더 큰 고통이 찾아오는 것이 아닐까 먼저 두려움에 떨게 된다. 암을 한번 극복했으나 두 번째 암을 만나게 된 환자 역시 동일한 과정을 겪는다고 한다. 투병의 고통을 모르는 사람들은 “한 번 이겨낸 어려움이니 두 번째는 더 잘 극복할 수 있을 거다.”라고 위로하지만, 투병의 경험을 가진 당사자는 통증이 얼마나 찌르듯 아픈지, 회복 기간이 얼마나 더딘지 이미 경험한 사람이다. 한 번 더, 얼마큼의 시간을 길고 고통스럽게 견뎌야 하는지 이미 잘 알고 있어서 ‘먼저’ 고통이 반응한다는 것이다. 몸으로 겪어본 사람들만이 ‘먼저’ 알아보는 슬픔이 분명 존재하는 것이다.     


야코프 쉬카네더, 「종부성사」, 캔버스에 유채, 116×186cm, 1897, 체코 국립 미술관


 쉬카네더의 그림 「종부성사」를 보고 있으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전달된다. 죽음을 앞둔 이를 위한 종부성사終傅聖事는 또한 남겨진 이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림을 가득 채운 안개와 그늘이 사랑하는 이를 보내기 위한 눈물을 감추어 주고 있다. 전면의 여자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누군가를 배웅하고 있다. 얼굴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쓰라리게 울고 있을 것이다. 문 밖을 나서는 남자는 신부님을 부르러 가는 남편인가, 의식을 마치고 떠나가는 신부님인가, 혹은 망자亡子의 영혼을 품고 떠나가는 사자使者인가. 


 쉬카네더는 이십 대의 끝자락에 결혼한다. 간절히 안정하기 바랐을 것이다. 아이도 생겼다. 이제 남들처럼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아이는 생후 며칠 만에 죽음을 맞는다. 화가의 공포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쉬카네더는 프라하의 장식 예술학교 교수가 되고 서유럽까지 잘 알려질 정도로 인정받지만 죽음과 같은 고통에 매몰되었던 순간을 결코 잊지 않는다. 화가는 프라하의 가장 가난한 지역으로 찾아갔다. 유대인들이 주로 살던 곳이었다. 가난과 고난에 처한 여자를 주로 그렸다. 때때로 노년의 여자를 주인공으로 하기도 했다. 더욱더 힘없는 여자다. 쉬카네더는 평생을 걸쳐 인간의 고통과 슬픔, 고독, 그리고 가난을 그려냈다. 죽음 앞에 매일 선 인간이 죽음에 매몰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매일 일어섰다 내려앉았다. 


 앞서 소개한 『그늘』의 문장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형벌’로서의 죽음이든 ‘자살’로서의 죽음이든 ‘영생’으로서의 죽음이든, 죽음에 가까운 고통을 겪어 본 사람은 반대로 그런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 곧 죽음을 가까이해 본 사람은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된다.” 나는 시인에 대해 ‘나보다 먼저 아파주는 사람’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쉬카네더의 그림은 화가 역시 ‘나보다 먼저 아파주는 사람’임을 믿게 한다. 나보다 먼저 죽음과 싸워온 사람은 나보다 먼저 아파주는 사람이 된다. 


 2014년 겨울, 낯선 이를 만나 저녁을 함께했다. 그는 나에게 예의상 하는 질문 하나를 던졌다. “주말에는 뭐 하세요?” 조금 망설이다가 나는 대답했다. “오후에 영어 스터디 하고… 세월호 유가족이 하는 토요집회에 참석해요.” 갸우뚱하던 상대방은 서늘한 답변을 내놓았다. “저는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서 인풋 대비 아웃풋이 중요해요. 노력 대비 확률이 없는 일은 시도하지 않지요. 그들이 물론 옳고, 슬프고, 안됐고, 무척 안타깝지만 어차피 이길 수도 없고 밝힐 수도 없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쏟는 것은 허무하지 않나요?” 참지 못하고 날을 세우며 나는 대답했다. “아니요,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들은 죽음과도 같은 시간을 겪은 사람들이잖아요. 희망이 끊어졌다는 것이 절망(切望)인데, 절망적인 아픔 곁을 지킬 수 있다면, 그때의 위로는 그저 위로 이상일 테니까요.”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2016년 대한민국의 국민은 모두 알고 있다. 고통의 선봉장에 섰던 이들과 곁에 함께했던 이들은 허무하지 않았다. 작으나마 위로를 얻었다. 


 다 고통을 먼저 겪어본 이 덕분이다. 약간의 용기를 내어 죽음 앞에서 서 본다. 강한 사람은 강한 대로 약한 사람은 약한 대로, 제 모습은 각각이다. “누구나 죽음에 맞서서 싸운다.”는 사건은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 같다. 대부분의 인간은 겁먹은 모습으로 죽음 앞에 선다. 빈약한 무기를 들기는커녕 빈손으로 서는 경우는 더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약한 인간이 텅 빈 손으로 죽음 앞에 담대히 서는 것이 부활이라고 믿는다. 잠시 한낱 인간이었던 그리스도가 그러하셨듯이. 


 있을 수 없는 일을, 믿을 수 없는 일을 의미하는 부활의 날이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슬픔 가득한 이들에게, 그리고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죽음 같은 고통에 맞서 싸우는 모든 이에게, 세상의 모든 고통이 ‘부활과 같이’ 전복되고 위로받는 날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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