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종착지가 아니라 여행길에 있다
*스포 주의*
이 영화는 그야말로 '픽사가 픽사했다'고 할 수 있다. 호불호가 갈리는 모양인데, <인사이드 아웃>을 재밌게 봤다면 <소울>도 취향에 맞을 것이다. 특히, 우울증을 앓고 있거나 과거에 앓았던 적이 있다면 더더욱.
오늘은 날이 아주 좋았다. 미세먼지도 없고 따뜻했고 햇살이 눈부셨다. 1년 전의 나였다면, 눈물을 흘리며 살고 싶다고 생각했을 날씨였다. 그리고 이런 날 <소울>을 봤다니, 타이밍이 예술이다. 누군가 이 영화는 엔딩 크레딧이 끝나고 영화관을 나와 하늘을 보는 것까지가 완성이라더니, 나는 운이 좋았다.
작년 봄, 너무 지치고 힘들어 제발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했던 날,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며 울다 지쳐 쓰러진 날, 따스한 봄바람이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눈처럼 내려줬다. 나는 그 선물 같은 꽃눈을 맞으며 아, 살아야겠다, 생각했지. 그 날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우수수 떨어지는 벚꽃을 멍하니 쳐다보던 그 날의 나와 떨어지는 낙엽을 손에 쥐던 영혼 22가 천천히 오버랩됐다. 특별한 계기라든가, 목적이 생긴 건 아니었다. 그냥 나도 모르게 계속, 끝까지 살아봐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아마 22도 어떤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냥 한 번 살아보고 싶었겠지. 그다지 멋지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인생이더라도, 평범한 일상에 작은 숨통 하나 있으면 그게 내 마음에 생명을 불어넣어주니까.
그러고 보면 나도 참 꿈에 집착하곤 했다. 어릴 땐 하도하고 싶은 게 많아 책으로 써도 모자란다고 엄마한테 말했다던데. 이리저리 부딪히고 깨지고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 그 모든 것에서 도망치기 급급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꿈이 없어서 방황하는 거라고 나의 회피성을 변명하고 위안하면서 동시에 꿈을 좇는 사람들이 빛나 보여 동경하던 지난 시절들. 그래서 조가 아빠의 양복을 물려받았을 때 눈물이 차올랐다. 마음속에 꿈을 품은 사람들은 결국 진심이 있다는 말이니까. 진심은 통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의 픽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꿈을 이루면서 팡파르가 터지고 엔딩이 나는 게 아니라, 나를 데려다줬던 지하철에 몸을 싣고 집으로 향한다. 꿈이 이뤄지고 끝이 아니라 다시 반복이 되고 현실이 되면서 느끼는 허무함, 허탈함. 꿈이 목적이었던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현상이다. 마치 대학을 목표로 달려왔던 수험생이 막상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느끼는 감정이랄까.
불꽃은 삶의 목적이 아니라 살아갈 준비가 되면 생기는 것이라 했다. 꿈도 비슷하다. 꿈 그 자체가 인생의 목표가 되면 안 된다.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나의 노력과 진심, 성장하는 과정, 이루고 나서 느끼는 뿌듯함과 성취감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중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꿈이 없어도 괜찮다는 것.
나는 그동안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맸다. 목적 없는 삶이란 얼마나 무의미한가, 그래서 내 삶은 무가치하다 여겼다. 그러나 맛있는 한 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작은 친절, 기분 좋은 바람, 사랑스러운 동물들, 이런 사소한 것들이 모여 오늘의 나를 만들고 우리의 일상을 만들고 무사히 인생을 살아가게 만든다. 꿈이 없고, 목적이 없으면 어떠랴. 행복은 종착지가 아니라 여행길에 있다.
부디 다른 사람들이 날 좋은 날 <소울>을 관람하길 바란다. 여담이지만, 앞에 나오는 짧은 애니메이션은 여태껏 봐왔던 그것들 중에 제일 귀엽고 재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