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전공자가 쓰는 sf는 다르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물리 8등급이었던 나는 중간중간 약간의 흐린 눈을 하며 착실히 읽어나갔다. 확실히 많이 알면 설명이 디테일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한 번 더 상기시켰다. 만약 내가 sf를 썼다면 대충 웅앵 하면서 넘어갔을 게 분명하다. 김초엽 당신은 문이과 통합 인재..?!
물리 8등급 생물 7등급이었던 나는 그냥 과학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sf장르 역시 굉장히 피하는 편식쟁이인데 올해는 꽤 sf와 친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돌이킬 수 있는>과 천선란 작가의 <천 개의 파랑>을 읽었고 정세랑 작가의 <목소리를 드릴게요> 역시 재밌게 봤고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까지 네 권이나 읽었다니 나에게는 역사적인 한 해다. 이렇게 편식을 고쳐가야지. 아무튼 저만큼이 내가 읽은 sf소설의 다라고 해도 될 만큼 본 게 없다. 앞의 두 편은 장편 소설이라 상관없는데 <목소리를 드릴게요>와 <우빛속>은 단편 소설들을 엮은 책이라 그러고 싶지 않아도 자꾸 비교를 하면서 읽게 되었다.
먼저 정세랑식 sf는 정세랑 작가 특유의 유쾌하고 유머러스함이 잔뜩 묻어난다. 그리고 외계에서 지구를 생각하게 되는 느낌이 강하다. 반면 김초엽 작가는 진지하고 지구에서 우주를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된다. 두 책 모두 보여주고 싶은 지구의 모습이, 그리고 우주의 모습이 뚜렷해서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우빛속>에는 "정상성"에서 벗어난 지구인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을 굳이 사회적 약자라고 칭하고 싶진 않아서 '소수'라고 부르고 싶다. 세상에 부자의 수가 극히 적지만, 그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소수'는 그들의 수와는 관련이 없다. 여자, 장애인, 비혼모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냥 좀 궁금해진다. 인간이 우주를 정복하려고 하는 동안 꽤 많은 시간이 흘렀을 거고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을 게 분명한데 왜 소수는 여전히 소수인지. 외계인과 소통은 되는데 그때까지도 기득권은 끝까지 힘을 누리는 것인지. 왜, 어째서 그 반대의 상황은 상상 속에서도 보기 힘든 것인지.
많은 단편이 수록되어있지만, 제일 좋았던 세 편을 꼽자면
1.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두 가지로 나눠서 보여준 것이 인상 깊다. 사랑하는 사람이 받을 차별을 위해 새로운 유토피아를 직접 만드는 것.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갈 세계를 바꾸기 위해 투쟁하는 것. 너무 다른 방식이지만 결국은 모두 자신이 아닌 타인을 생각해서 선택하는 거라는 게 참 대단하다. 나는 과연 어느 쪽을 택했을까. 나는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그렇게까지 노력할 수 있을까. 많은 생각이 들었다.
2. 스펙트럼
영화 콘택트가 저절로 생각나는 소설이었다. 언어란 뭘까? 학교 다닐 때 과제로 뭘 낼 때마다 서두로 던지면서도 항상 그 답을 찾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소통하는데 언어가 꼭 필요하지는 않지. 하지만 그런 비언어적 소통조차 언어라는 사실이 재밌긴 하다. 결국 언어란 생명체와 생명체가 더 잘 소통하고 이해하려고 하는 걸까. 아무튼 이 단편 소설은 영화화된다는데 색감이 예술일 것 같다. 루이를 어떻게 구현할지 궁금하다. 내가 생각한 루이는 약간 아바타와 골룸 그 어딘가... 아, 루이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앞선 루이의 흔적을 보고 주인공을 아껴준다는 설정이 진짜 특이하다. 주인공과 직접 상호작용을 한 것도 아닌데 그럴 수가 있다니.
3.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나의 최애 편이다. 우주로 올라가는 대신 바다로 뛰어내린 재경이 너무 멋지다.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관심을 뒤로하고 망설임 없이 바다로 간 재경이 눈물겹기까지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왜 인간은 바다보다 우주에 더 지대한 관심을 가질까 생각해봤다. 아주 어둡고 외롭다는 점에서 닮았지만, 결국 우주엔 빛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게 나의 결론이다. 태양이나 별 등 우주는 결국 빛이 시작되는 곳인데 우리는 본능처럼 이 빛에 이끌리고 있는 게 아닐까. 재경은 아주 어두운 심해를 유영하고 있겠지. 부디 너무 외롭진 않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