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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황정은 - 상류엔 맹금류

체념하는 삶

by 좀머

황정은 작가의 글은 <디디의 우산>을 통해 처음 접했는데 솔직히 나와 맞지는 않았다. 긴 호흡이 책장을 못 넘기게 했다. 하지만, <상류의 맹금류>는 달랐다.


읽는 내내 숨이 막혔다.

재희네 부모님을 함부로 재단하는 주인공에게 이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책임'이라고 떠맡은 것이 자식들에게는 '빚'이었을 테니까.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결국은 모두에게 상처만 될 뿐이다.

어찌 되었든 부모님은 책임을 지기로 마음먹었고 최선을 다했다. 사랑도 잃지 않았다. 그래서 제희와 누나들이 먼저 배운 건 '체념'이었음이 분명하다. 비탈길을 내려가는 부모님을 체념했듯이, 제희는 몇 번이고 체념하고 단념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아팠다.

마음껏 미워하지도 못하고, 저들의 무지 혹은 무식이 삶에 치여 우아함(그래, 이것은 윤리가 아니다)을 미처 배우지 못했음을 알고, 그리고 마치 그것이 나의 탄생과 연관 있는 것 같은 알 수 없는 죄책감을 끌어안고 그저 가만히 그들의 등을 바라보는 것이다.

여행이 처음이라는 부모님.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그 어느 하나 놓지 못하는 그들의 뒤를 나는 아픈 다리를 절뚝거리며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래, 나는 그들의 삶을 판단하고 끔찍이 여기는 '나'인 동시에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서 그들을 지켜보며 체념하는 제희다.


네 탓이라고 누군가 노려볼 때 그게 왜
내 탓이냐고 항변하고 싶은데
생각하고 보면 내 탓인 것 같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는 삶
- 작가의 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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