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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구 Nov 19. 2020

토토

내가 알던 사람, O에 대한 이야기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고, 인터넷의 보급과 발달로 정말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만 같았던 2000년대 초반. 나에게도 이메일이 생겼다.


 아빠가 만들어주신 나의 첫 아이디는 재미없게도 나의 이름 세 글자의 첫 번째 알파벳들과 내가 태어난 연도의 뒷자리 숫자 두 개를 조합한 것이었다. 거의 실명에 가까운 아이디를 가지고 인터넷 세상에서 내가 주로 했던 건, 시답잖은 이야기로 내일 학교에서도 얼굴을 볼 친구들과 이메일 주고받기, 담임 선생님이 만들어둔 학급 카페에 들어가서 게시물 구경하기, 그리고 포털 사이트에 꼭 덤으로 딸려있던 '주니어' 페이지에 들어가서 게임하기. O는 그곳에서 만난 친구였다.


 정확히 무슨 게임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각자의 닉네임을 설정해서 캐릭터가 되어 참가하는 게임이었다. 게임 속에선 채팅창으로 플레이어들끼리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나를 포함한 총 네 명의 플레이어가 게임을 하다가 한 판이 끝났고, 나와 O를 제외한 나머지 둘은 그 게임방에서 나가버렸다. 사실 그 방에 들어갔을 때부터 O의 닉네임을 눈여겨보곤 꼭 한 번 말을 걸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는 O의 닉네임이 내가 재미있게 읽은 책의 주인공과 이름이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신기하게도 O는 나와 나이가 같은 여자아이였다. 우리는 게임 채팅창에서 서로 놀라워하며 대화를 하다가 이메일 주소를 교환했다. 못다 한 이야기는 이메일로 마저 하기로 했다. 나는 솔직하게 O의 닉네임을 보고 먼저 말을 걸게 된 사연을 이야기했는데, 알고 보니 그 이름은 O네 강아지 이름이었다. O는 아버지 사업 때문에 한국이 아닌 중국에 살고 있었다. 닉네임이 반가워서 말을 걸었을 뿐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해외 펜팔 친구가 생겼다.


 내가 중국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곤 중국말을 쓴다는 것과 한국에 가까운 나라라는 것뿐이었다. O는 친절하게도 중국의 수도가 어디인지, 또 자신이 사는 도시는 어디인지 설명해줬다.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절에도 O는 나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동네방네 불꽃놀이를 해대서 시끄럽단 얘기와 한국에 돌아가고 싶단 얘기도 담겨있었다. 

 

 몇 번의 이메일이 오고 가면서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궁금해하기도 했다. O가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을 때, 나는 거의 반쯤은 베개로 얼굴을 가리고, 아빠의 디지털카메라로 찍어두었던 저화질의 사진 파일을 한 장 겨우 골라서 이메일에 첨부해서 보냈다. 내 얼굴을 보고 실망하면 어쩌지, 과연 우리가 계속 이메일을 주고받을까, 하는 소소한 고민과 함께. 고맙게도 O는 내가 무척 귀엽게 생겼다며 칭찬을 했고, 자신이 한국에 들어오면 꼭 한 번 만나자는 약속도 했다.


 나는 집에 한 대 있었던 컴퓨터를 날마다 쓸 순 없었고, 컴퓨터를 할 때마다 이메일을 확인하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의 온라인 펜팔은 마치 오프라인 펜팔처럼 뜨문뜨문 이어지다가, 어느 날 끊겼다.

 어쩌면 나는 당장 내 눈에 보이는 일들에 정신이 없어서 때론 O의 존재를 잊기도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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