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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누리 Dec 30. 2023

3화 마르쉐 커피장

<장기적 우상향 클럽>

  하루 두 잔의 커피, 달에 서너권의 책, 가끔 휘낭시에.


  코딩에 보면 *if문(*=조건문; 조건문 뒤에 가정한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 수행하도록 정의하는 문장.)이란게 있다. 본인이 자주 하는 일상적-if문 중의 하나는 '빈털털이 가정문'이다. 그러니까 나의 수입이 반토막이 나거나 몇달간의 수입이 없어진다면 나는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포기할 수 없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글만으로 살게되는 경우에는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 때를 대비하여 내가 놓을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본다.)


  1. 가장 먼저 놓는 것은 옷과 구두다.

  물욕이 없다고 하기에는 진실되지 못하다. 꾸미는 것을 (그나마) 참을 수가 있다.

게다가 외모에 관심이 많던 2후3초를 지나오면서 이미 충분히 구매해버린 탓인지. 미디어의 유행선전 앞에서 척화비 세우고 일시적 마음들을 잘 다스린다면 본인이 마흔까지는 지금껏 소유한 것들의 조합으로 이럭저럭 소탈한 인간상 흉내를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해본다.


  2. 가장 고민스러운 것은 커피/책/가끔 디저트/운동에 드는 비용이다.

  하나같이 누구에게는 여가나 여유의 항목들. 암만 생각해보아도 저놈들은 놓을 수가 없다. 배를 곯아서도 커피를 사먹을거다 나는. 어쩐일로 배고픈 소크라테스 팔자를 타고난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크라테스보다 다행인 점은 고대 그리스에 비하여 현대의 서울에서는 나열한 항목들의 비용을 세이브 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있다. 좌우간 나는 구립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볼 수 있을 것이고(책), 유투브 광고 세개 쯤을 기꺼이 소비한 뒤 비디오를 틀어놓고 요가를 할 수 있을 것이다(운동).


  그렇다면 종국의 사치재는 기어코 커피와 휘낭시에가 남는다.



본인은 커피, 책, 꿈으로 구성되어 있다.



  커피, 커피, 커피.


  커피는 노동자의 음료라고 한다. 그러니까 18세기 유럽내 커피의 보급은 산업혁명과 맥을 함께한다. 다양한 기계의 발명으로 공장주들은 쉬지않고 공장을 굴리고 싶어했고, 이에 따라 노동자당 노동시간은 증가하기 마련이었다. 맥주를 즐기던 인구들에게 커피를 널리 보급하며 카페인에 기댄 생산성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내가 커피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참-노동자의 자아를 타고나서 그런 것은 아닐 터. (그것이 사실이라면 너무 서글프다. 아닌 것으로. ) 나는 커피의 온도, 향, 맛의 조화가 주는 순간의 기분을 좋아한다. 내가 이 세계에서 제일의 가치로 치는 것 중 하나가 *'사람의 기분을 바꾸는 것'인데 그런 측면에서 커피는 매우 많은 사람들의 기분을 빠르게 바꾸어준다. 그것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람의 기분, 즉, 감정을 다루는 것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번뜩이는 생각으로 누군가를 설득할 수도 있지만, 적극적인 설득 외에도 편안하고 좋은 감정을 만드는 것들로 사람들을 매료시키기도 한다. 나는 후자가 참으로 신묘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서 보다 관심이 간다.)


  아무렴 이토록-커죽커살-본인이 일상적으로 인스타그램을 밀어올리다가 성수에서 '마르쉐(생산자와 소비자가 바로 만날 수 있는 농부시장) 커피장'이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는 마음이 온통 동당거렸다. 누적된 경험으로 이렇게 주제가 또렷한 행사장은 관심사의 원이 겹치는 사람과 동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누구 한명은 적극적으로 구경하는 누구를 기다리는 시간으로 허비해버리면서 인파에 금세 지쳐버리기 때문이다. 나 말고도 이 동네에 커피를 좋아하면서 주말에 시간이 나는 사람이 누구가 있을까. 이럴 때면 머릿속 전화번호부가 초속얼마얼마의 속도로 잽싸게 넘어간다. 손끝에 걸린 페이지. 멈춤이다. 우리 횐님. 특정 카페에 자주 태그되던 우리 횐님이 있구나.


  - 횐님, 혹시여. 일요일에 마르쉐 커피장 가실래요?

    저 뒤에 일정이 있어가주구 한시간 정도 간단하게.

    [인스타 게시글 주소 유첨]


 나는 (횐님 한정판) 플러팅의 귀재가 되어간다.


  - 제안해주셔서 감사해요. 마침 저, 이런저런 경험을 많이 해봐야지 생각하고 있었어요. 가볼래요.


  마르쉐의 오픈 시간에 맞추어 횐님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는 강아지를 업은 남자로 부터 머리통이 열두개쯤 이어진 곳에 줄을 서서 입장을 하는 것에 성공했다. 다만, 계획과 달리 의외로 커피를 둘러보기는 어려웠다. 사실 커피도슨트가 궁금했는데, 예약이나 줄서기에 젬병이라 당연히 티켓팅에 실패했고. 먼 말치에서 귀동냥이라도 해볼까했지만 그마저도 어려웠다. 아직은 잘 알지 못하는 커피장의 매대들 사이로 그저 관심을 표현하는 발자욱만 와리가리 할 뿐이었다. 좋아하는 것으로의 관심의 초두는 늘 어설프고 혼자서 쑥쓰럽다.


  결국 한라산 로즈마리와 밤송이 판매 매대를 지나 자비로운 횐님에게서 뿌추(뿌리는 후추) 몇개를 선물받고는 크리스마스를 연상케하는 붉은 크랜베리가 담뿍 올라간 브라우니와 드립 커피 한잔을 사서 스탠딩 커피바에 자리를 잡았다.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횐님과의 대화.


  - 커피장 다음에는 뭐하세요?

  - 아, 저 사실 오늘 제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갓생인 친구를 만나러 가요!


  한참을 떠들었다. 갓생으로의 동경이라는 공통점을 그리는 두명이다. 둘은 기록에도 저마다의 성격이 있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람마다 외모 성격 취향이 다르듯이, 잘 맞는 기록의 형태마저 다르다는 지론이다. 이전에 친구가 연애에 빗대어 해준 말을 조금 바꾸어서 주절거려본다. "기록이 안맞는 사람은 없어. 안 맞는 기록을 했을 뿐이지." (본래의 쿼트는 "연애가 안맞는 사람은 없어. 안맞는 연애를 했을 뿐이지."이다.) 나는 진실로 믿는다. 저마다의 기록이 있다. 기록을 하지 않는 것 마저 기록의 범주로 보기 때문에.






크랜베리 브라우니.



  가령, 나의 기록의 모토는 ‘느슨하고 꾸준하게’ 이다. 내게도 무엇의 성취를 위해 꾸준함이 늘 지향에 있지만, 청개구리 내면으로 인해 '해야만 한다'는 강압적인 룰이 생기는 순간 동기부여가 팍하고 반감되어 버린다. 따라서 정말 내가 하고싶어서 하도록, 스스로를 어느정도 방치해주는 것이(정말로 핑계가 아니라) 내게는 더 효과적이다. 10대부터의 숱한 시행착오로 알게된 나의 사용법이다. 이러한 방식은 유연하고 자연스러운 무엇을 창조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창의적인 일의 경우에는 실타래가 풀렸다가 다시 엉켰다가, 어떨때는 몇 해전의 것으로 돌아가는 일이 오히려 진전인 경우가 많기도 하기 때문에, 반드시 직선적인 진보만이 정답은 아니다. 그저 모든 일상에서 모든 감각과 모든 수단으로 다가오는 단서들을 포착하고 수집하는 기록이다. 무엇이 다음을 만들어낼 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영역이다. 여기에서 '반드시'의 마음은 조바심의 수치를 올려 종종 그런 것들을 보지 못하게 만들기도 하기에 '느슨하게'의 문구로 스스로를 다스린다. 막연하다-그러나-꾸준히-나아갈-수-있다는 마음으로.


  반면에, 어떤 이는 '반드시', '해야만 한다'가 기록의 강력한 동력이 되기도 한다. 해야만 하는 것을 차곡차곡 쌓아내고 그것의 증거물로써 기록된 무엇들을 통해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지속적으로 확인해가는 방식인 것이다.  그런 기록들은 내면의 기둥이 되어 어디에서도 단단하고 흔들리지 않는 추진력을 만들어낸다. '잘'과 '잘못'의 경계가 명확한 일들을 해내야 하는 사람일수록 이런 형태의 기록이 알맞다. 판단에 따른 결과가 수치적으로 명시되게 되거나, 많은 세상의 '룰'들을 엮어서 더 '정확한' 것들을 이루어내야 하는 경우이다. 이런 영역에서는 돌아가서는 안된다. 돌이킬 수도 없고 매일매일의 블록들을 단단하게 쌓는 것이 결과로 바로 이어진다. 하루도 허투루 흔들릴 수 없는 일이다.


  생각해보면 마주하는 일의 성격에 따라 기록의 형태를 바꾸어내기도 한다. 본인은 업무에 있어서는 후자를 지향하고, 읽고 쓰는 일은 전자를 활용한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근래 유행하는 갓생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정말 유투브나 인스타그램에서 자수성가 타이틀을 달고서 나오는 비디오들만이 갓생의 방법일까. 저마다의 갓생의 모양도 다른 것은 아닐까. 우리는 각각이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모양의 지향과 성취, 그리고 그것을 위한 기록의 기질을 타고난 것은 아닐지. 미디어 노출의 빈도가 높아지면서 특정 관념에 대하여 지나치게 편중된 생각들이 정답처럼 통용되기도 하는 것 같다. 미디어의 발언은 어느쪽이고, 그렇다면 내게 맞는 것은 무엇인지 사고할 시간을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일방적 수용이 아니라 한곱절 본인에 대한 뎁스를 만드는 경험이 필요하다. 그래그래 아무렴 ‘기록의 다양성’을 지지하는 무엇을 만들면 좋겠다.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커피로 기인한 기록에 관한 풍요로운 대화의 시간.

나는 그 날을 마르쉐 커피장으로 기록했다.



제가 있는 곳은 함박눈이.

다들 눈길 조심하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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