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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누리 Aug 29. 2015

노약자석에 앉은 소감문

8월 29일의 일기

오늘은 오랜만에 서울 회동이 있었다. 몇년동안 동고동락한 울 삼성관 7979들의 졸업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신촌으로 향하는 470번 버스에서 사람이 너무 많아 어쩔 수 없이 카드 찍는 곳에 서성거리다가, 개이득으로 맨 앞자리에 앉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뒷자리를 선호하는지라 기사님의 뒷통수가 50센티 이내로 다가오는 그곳은 처음이었다. 그곳은 다른 곳보다 높은, 데크 위에 위치하는 자리였다.


그래서 나는 한없이 정체되는 퇴근시간의 서울중심에서, 거의 주기적으로 옆 차선의 버스에 탑승한 승객들과 눈맞춤을 하여야 했다. 그들은 세상 피로한 얼굴로 나에게 말을 걸면 당신을 듀겨버릴것이다하는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눈이 맞추어지는 2-3초의 순간마저 너무나도 송구스러웠다.


나는 본디 지하철에 앉으면 내 앞에 서있는 시민들의 배에 시선이 향하는데, 고 뱃속에 뭔 음식이 들었을까 생각하는 시간을 보내곤 했다. 뭐 가령 내 앞의 예쁜 언니를 아침에 먹은 미역국을 신촌에서 낙성대로 운반하는 개체로 생각하면 참 재미있었다. 그른데, 요번에는 나의 시선의 높이가 배가 아니라 눈이어서 상당히 다른 감정을 느꼈다.


예로부터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하셨다. 나는 사칠공에서 보낸 45분동안 몇개의 마음창을 보았는가. 그들과 랜덤리 눈맞춤을 하는 몇 초의 시간동안 나는 영문모를 미안한 감정에 사무쳤다. 그들의 피로한 세계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들의 우울한 하루가 다가왔다. 사람의 눈을 보는 일은 정말로 벅찬 이벤트이다. 노약자석 스티커가 붙은 고 맨앞자리에서, 나는 어쩌면 타인의 세계에 적셔지는 것이 두려워서 평소에 바닥이나 하늘따위만 보며 걷는지도 모르겠다하는 생각을 했다.


정말로 사람의 눈을 응시하는 일은 생각보다 무척 어려운 것 같다. 그리고, 자몽에이슬은 생각보다 무척 맛있는 것 같다! 상큼한 자몽향 흠씬나는 이슬만 먹는 한량을 꿈꾸면서, 나는 돌아오는 470에서는 가장 낮은 좌석에 앉았다. 신촌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70분간 나는 누구의 눈도 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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