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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누리 Nov 08. 2015

한손잡이

비오는 날의 투정

비가 오면 나는 영락없는 한손잡이가 된다. 하나의 손을 우산에 저당잡힌 채, 다른 손에 나머지 할일을 모두 부과한다. 한손의 비자유가 일으키는 순간의 파동은 매우 크다.


한손은 우산에 묶이고 다른손으로는 필요한 물건들을 주섬대면,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듣고 싶지 않은 노래를 넘길 수도 없고, 흐트러진 옷차림을 바로할 수도 없다. 나는 코트 한쪽이 멍청하게 올라간 채로 듣기 싫은 그 노래 들림을 당한다.


어제는 롯데마트에 간단히 맥주 한캔을 사러갔다가, 초콜렛도 사고, 세일하는 빼빼로도 사고, 맥주도 다섯개쯤 더 쟁이는 바람에 손에 들어가지 않아 종이쇼핑백에 담아왔다. 오른손으로 우산을 들고 한쪽 손목에 종이백을 걸고, 왼쪽 손바닥에는 키 카드, 카드지갑, 핸드폰을 차곡차곡 모아쥐고서 기숙사를 걸었다.


우라질. 기숙사에 거의 다왔는데 두번의 횡단보도 대기시간이 길었던 탓인지, 내 종이가방은 빗물에 슬쩍슬쩍 젖어 호가든 궁뎅이가 반쯤 드러나있었다. 그럼에도 불구, 나는 한쪽손을 저당잡혔기에 아무런 처치도 하지 못하고 제발제발하나님 하며 살금살금 그러나 잰걸음으로 문을 향했다.


문제는 그때. 현관키를 찍는 순간이었다.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던 종이가방 바닥이 털썩 내려앉았고, 나의 온갖것들이 복도바닥에 까발려졌다. 마침 지나가는 사람이 괜찮으시냐고 해서 가증스럽게도 나는 괜찮다 웃음을 짓고서 마음속으로 천마디 육두문자욕을 했다.


쭈그려앉아 물건들을 싸담자니 순간 괜히 짜증이나서 손에 쥐고있던 지갑과 핸드폰도 그 위로 함께 내동댕이쳤다. 어른의 미성숙행동일지라도, 나는 아무것도 쥐고 싶지 않았다. 그런 순간에는 내 양손을 자유에 두고 싶었다.


결국 집에 올라가 장바구니를 가져와 모두 다 주워담아 다시 집에 왔다. 그리고 아까 그  야속하던 호가든 머리를 시원하게 따고서 벌컥벌컥 하는데, 마음은 고 박자에 맞춰서 울컥, 울컥, 했다.


사람 사는 것도 양손을 가진 한손잡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은 싫지만 해야하는 일에 한손을 묶어야 하고, 다른 한손으로 나머지를 채우려고 버둥거린다. 세상에는 항상 부닥쳐야할 비가 오고, 우리는 우산을 쓰고서도 더 큰 우산을 구하려고 부단히 뛰어야 한다.


나는 신을 믿지도 않는 독단적 외곬수 연희동 골방의 꼰대 주제에 그런 순간에는 항상 신을 원망한다. 왜 사람의 손은 두개이고, 세상에는 항상 비가 내리는지. 왜 새에게는 날개가 두개인데, 사람은 손이 두개인지.


조금 있으면 약속을 나가야 한다. 나는 창밖의 빗소리를 들으면서 도리도리 해보지만, 안된다. 그래도 나가야 한다. 우산을 들고 비를 막야아 한다. 그게 오늘의 할 일이다. 나는 양손으로 그저 맥주와 만화책을 그득 끌어안는 햇살밝은 날을 그리며, 매일매일 검정우산을 쓴다. 그런날은 오지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매일 그런 꿈을 꾼다. 그냥 원래 그런 것이다.





원래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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