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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누리 Sep 21. 2016

대학원 단상

논문 자격 시험이 일주일하고 하루 남았다.

논문 자격 시험이 일주일하고 하루 남았다. 그야말로 눈코뜰새가 없다. 밥은 생각나면 먹는 것이고, 잠은 참을 수 없으면 자는 것이다. 망할 선행 연구는 왜이렇게나 많은 것인지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다. 영어가 싫어서 이과에 갔던 나누리가 영어글 읽는 시간이 하루에 삼분지 일이 넘어갈 줄 누가 알았겠나. 이것 참. 살아봐야 알 일이다.


그렇게 온종일 의자에 딱붙어서 꼬부랑글을 읽은 담에 한국말로 우아하게 뱉어내야 하는데 그게 또 문제다. 글이 쭉쭉 뻗어나가지 못한다. 머리통에 논문식 단어 라이브러리도 턱없이 부족하고, 단어 자체의의 인과도 하루에도 몇번씩 헷갈린다. 국어가 이렇게 어려운 줄 이제야 알겠다.


선배가 그랬다. 논문은 말꼬리 물고 늘어져 트집 잡기 좋아하는 재수없는 인간이 쓰는 글이라고. 문장 하나 뻗을 때 마다 이게 맞는말인지 나부터 의심이 간다. 한줄-한줄 이렇게 졸업때까지 백장이나 쓰다보면 나는 트집잡기 정규분포에서 존나-예민 타이틀 달고 왼쪽 극단으로 이동할 것이 분명하다.


이곳에 내 마음 닿는대로 키보드를 두드리니 해방감 마저 든다. 일년 전의 나는 단순히 글쓰기가 좋아 대학원에 왔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명백한 경기도 오산이었음은 진작에 알았다. 물론 표면적으로 두가지 다 텍스트 형태의 아웃풋이 나온다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일이었다. 생각의 성질이 있다면, 그것이 다른 작업으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맥주나 홀짝임서 공수래공수거하는 한량 아이덴티티가지고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정신머리를 연구형 인간으로 개조하는데 일년이 걸렸고, 기대와 달리 지식의 양은 그다지 늘어나지 못했다. 다만, 1단계로 하던 생각이 감수분열하여 20단계는 늘어난 것 같다. 이따금씩 이곳을 졸업하면 나는 다시 한량이가 될 수 있을까 자신에게 질문을 한다. 어떤 날은 예스이고 어떤 날은 네버이다.


SNS에 관련해 연구주제를 잡았을 때, 복수 자아를 운영하는 것에 관련한 글을 읽었다. 디지털 시대에 현대인의 자아는 세가지인데, 하나는 익명성 아래 나타나는 참자아 / 두번째는 현실에서 드러나는 현실자아(real self) / 세번째는 SNS로 '구성'되는 희망자아(possilble or hope-for self) 이다. 기분이 좋았다. 현실에서는 존나-예민 자아를 키우고, SNS에서는 한량 자아를 키울 수 있겠지. 줄리언 바지니가 그랬다. 통합된 하나의 자아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오래된 환상이라 그랬다. 한사람은 물리적으로만 하나로 카운트 될 뿐이지, 백가지 자아로 살아가는 것이다.


논문 자격 시험만 지나면/ 이프 문장 만들어 두고서, 그 뒤에 부어라 마셔라하는 소주맥주양주 주자 돌림들만 생각나는 것 보면 나는 여적까지 한량 자아를 잘 운영하고 있는 것 같다. 대학 생활의 팔할이던 신촌 와라와라는 아직 잘 있을까. 점장님 안부마저 궁금하다. 시월이 오면 신촌에 가서 치즈계란말이 가지런히 깔아놓고 맥주붓고 소주붓고 한 다음에, 비틀비틀 아무 택시나 잡아 타고 홍대로 넘어가서 그레잇트 후카바에서 놀아야지. 재미 없어지면 새벽 거리에다대고 어쩌라고 소리도 지르고 편의점에서 나오는 아이돌 음악에 맞춰서 댄스도 추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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