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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누리 Dec 01. 2018

유명 건물에서 알바해본 썰

맥주펍 알바의 일은 퍽 적성에 맞았다.

최근 회사에서 들른 전시에서 대학 시절 알바했던 건물의 사진이 핀 조명 아래 걸려있는 모습을 보았다. 당시에도 건물 외관이 참 멋이 나서 아르바이트 자리에 지원했는데, 전시 내용을 보아하니 굉장히 유명한 건축가 김중업씨의 작품이었다.

빨간 벽돌을 동그랗게 쌓아올려 지은 건물이다. 연희동의 랜드마크 사러가마트 바로 옆에 있는 건물인데, 본래는 어떤 부자의 집으로 지어졌고, 지금은 상업건물로 사용된다. 구체적으로, 지하는 맥주펍으로 위로 일이삼층은 카페로 사용되고 있다.

일층에는 벽난로가 있었다. 오른쪽의 계단을 빙 둘러 올라가면 이층에는 스태인드그라스 창문으로 노란빛이 들어왔고, 삼층에는 동그란 창문이 난 다락모양의 공간이 있었다. 이 공간은 모두 커피와 빵을 파는 에스프레소 하우스(haus로 독일식 표기를 사용하고 있었음.) 의 것이었고,

나는 반층 아래 맥주펍의 알바였다. 카페와 펍 두 가지 모두 같은 사장님이 운영하셨다. 사장님은 호주에서 살다오신 여성분이셨는데, 주로 펍에 계셨다. 나는 학교를 마치고 펍에 가서 사장님과 저녁도 만들어 먹고 미주알고주알 아무런 이야기하는 것이 재미났다.

건축가 김중업 전시에서 마주친 연희동 에스프레소 하우스


맥주펍 알바의 일은 퍽 적성에 맞았다. 출근하면 주방 옆의 애매한 공간에서 등짝에 staff라고 적힌 카라 티셔츠를 입는다. 이 티셔츠는 알바계에 대대손손 내려오는 옷이라 몇명이나 나하고 같은 옷을 입었는지 알 수 없었다. (나중엔 한번 세탁해와서 입었지만.. 오랜시간 그대로 입었음.) 그리고 칼스버그 맥주사에서 나눠준 앞치마를 허리춤에 묶는다.

알바의 차림이 되었으면, 창문을 열고 조명에 불을 켠다. 저녁-밤 장사이기 때문에 조명으로 오픈되어있음을 알리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바깥 조명과 안쪽 조명을 한바퀴 켠 뒤에는 알콜 칙칙이를 뿌리며 테이블을 닦는다. 축구게임이 있는 방이나 스크린 달린 넓은 테이블 구석구석을 돌면서 닦는다. 마지막으로 내 자리. 대리석으로 된 바 테이블을 칙칙이로 닦는다.

그쯤 되면 사장님이 커피 한잔 줄까? 하신다. 나는 네, 하고 다녀올게요- 한 다음 쏜살같이 일층으로 올라가 밑에 펍에 아이스라떼 두잔이여- 하고 구석 테이블에 앉는다. 다리를 까딱까딱 거리다가 라떼 나왔어여-하면 냉큼 받아서 내려간다. 맛있는 커피가 공짜.

사장님이랑 커피를 마시면서 손님을 기다린다. 오늘은 비가 와서 손님이 별로 없겠다던가. 저녁에 스테이크 구워먹을래?이런 이야기를 한다. 중간중간 하이네켄 기네스 이런 조끼 입은 남자들이 와서 생맥주를 넣어준다. 안녕하세여- 오늘은 하이네켄 두통 맞져? 네 여기 놔 주세여. 감사합니다~

손님이 아주 없는 날은 주방장 이모도 바 자리로 나온다. 우리셋은 나란히 앉아서 참외를 깎아먹거나 올 시즌 샘플로 들어온 메이플맥주나 뭐시기IPA같은걸 마신다. 주방장 이모는 망원동에 살고 있었는데, 망원 시장에서 뭐가 맛있는지, 코스트코에서 사면 좋은 물건이 뭐가 있는지 그런 정보들을 많이 알려주셨다.

사장님이나 주방장 이모는 매일 나와 저녁을 먹는 유사-가족이었다. 나를 퍽 예뻐해주신 덕분에 안주도 자주 빼다먹고, 저녁도 잘 챙겨먹고, 궁금한 술도 다 마셔볼 수 있었다.

여름에는 유사-가족이 하나 더 늘었다. 이름은 앤디. 외국인학교를 나온 반은 미국인 반은 한국인인 친구. 그 친구가 오고 나서부터는 스포티파이로 매장 음악을 틀었다. 나는 잘 알지 못하는 엄청나게 신나는 노래들을 많이 알려주었다. 앤디는 알바비를 모아서 영화를 찍는다고 했다. 평일에 종종 촬영을 하고 왔는데, 영화를 찍는 이야기는 정말 재밌었다. -홍콩에서 촬영을 할거다. 어떤 내용으로 찍을거다. (솔직히 몇번은 속으로 터무니없다고 생각했음. 지금은 굉장히 멋지다고 생각.)

앤디의 친구들은 유명 연예인의 자제나 처음듣는 학교의 사람들이 많았다. 대부분 여름방학을 맞아 한국을 찾은 유학생들이었다. 앤디를 보러 펍에 놀러오는 덕분에 그들과도 대화를 많이 할 수 있었다. 그 중의 절반은 한국말을 잘 못했지만. 우리는 그럭저럭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이내 앤디의 여름방학이 끝났다. 나는 연희동에 남았다. 다시 셋. 여름이 지나니 맥주 펍의 손님도 한풀 꺾였다. 대학의 공부도 한시름 놓였다. 나는 생맥주 뽑아두고,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거나 연필로 낙서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한풀 꺾인 손님에 사장님은 매일 펍 운영에 대한 고민상담을 해왔다. 사장님과 머리 맞대고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안주를 고안하고 테스트했다. 맛있지만 너무 느끼해. 맥주랑 먹기에는 과해. 단가가 너무 비싸. ... 매일매일 실패.

우왕좌왕 하는 중에 망원동 이모가 폭탄선언을 했다. 더 많은 돈이 필요해 식당일을 찾아본다고. 맥주는 똑같았지만 안줏거리가 무거워졌다. 행복하던 빨간 벽돌에서의 삶에 위기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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