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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누리 Dec 01. 2020

출신

회사 관찰-1

아부지가 언제 나씨 가문 족보를 비싼값에 사온 적이 있다. 당시 유행했던, 인맥(구체적으로, 혈연) 기반 BM(비즈니스모델)이다. 돌이켜보면 참 기가 막힌 비즈니스다. 그들은 당시 KT-한국통신-에서 집집마다 배포하던 전화번호부의 'ㄴ'을 색인하고, 나씨 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모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처럼 거절을 못하는 사람을 만나면 값의 몇배를 부르며 장사를 했다. 심지어 우리 아부지를 타고 육촌 아저씨 두분에게도 팔았으니, 꼬리를 물고 판매를 넓혀가는 효과적인 판매전법이다. 아부지는 어머니께 잔뜩 쿠사리를 들었지만, 어머니가 주무시러 간 뒤로, 나와 아버지는 거실 한켠에서 우리 '파'의 족보를 찾아보며 한참을 재미나게 떠들었다.


회사에는 (족보도 없는데) 출신 찾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과 마주치면 대부분 어떤 '출신'이냐.를 설명하는 데에 첫만남을 사용한다. 이 '출신'은 학교도 되고(초,중,고,대,대학원 모두 가능하다. 드물지만 유치원도.) 이전 직장도 된다. 재미난 것이, 같은 학교에서 또 직장에서 얼굴 본 적도 없음서, 같은 '출신'임이 포착되면 우리-써클-후보에 넣어준다. 이러한 출신론자들은, 출신을 자신의 아이덴티티와 동일시 한다. 때문에, 같은 출신의 사람을 쉬이 배척할 수 없다. 그것은 곧, 스스로를 배척하는 일이므로.


그제 카톡방에서 출신은 무엇인가 이야길하는데, S기업에 다니는 Y 덧붙였다. 그건  특정 학교나 직장으로 맺어지지도 않으며, 때에 따라 '학교 그룹'이나 '직장 그룹'으로도 입맛에 맞게 변한다는 의견이다. 가령, 이대, 연대, 서강대 출신인들을 필요에 따라 '신촌인'으로 그러묶거나, 제조사가 아닌 회사에서 삼성, 엘지를 '제조사' 출신으로 함께 묶거나 하는 방식이다. (. '해외파' 슬프게도 대개  복잡성과 관계없이 하나로 묶인다. 다만, 디테일을 아는 사람이 나타나면 '미동부''미서부''유럽'이나, '교포''유학생' 등의 형태로 세분화된다. 다만, 대부분의 국내파-들은 이내 까먹고 구분짓지 못한다.) 이러한 '그룹짓기' 스킬은 출신론자의 입맛에 맞게  사람을 영역짓기에 유리하다. 카톡 말미에 Y 한마디 남겼다. "이러다 출생 병원도 묻겠어 정말!"


그렇다면, 출신론자를 만족시키는 방법은 무엇일까? 먼저, 출신이 많으면(?) 여러가지 '우리 출신'에 묶일 가능성이 높아지겠다. 뭐 출신은 곧 소속아니겠나. 많은 소속을 갖고싶다면 부지런해 질 수 밖에. 대강 학창시절부터 영양가 있는 동네로 이사를 많이 다니며 학교와 지역을 콜렉팅하거나, 성인이 되어 대학을 여러개(?) 다니고 전공도 많이 가진다. 또, 사회인이 된 뒤에는 회사를 여러곳 다닌다. 그러면 뭐라도 얻어걸리겠지 싶다.


재미난 것은, 이렇게 무작정 출신이 존재한다고 출신론자들로부터 인정받을 수는 없다. 대부분의 출신론자들은 대개 순혈론과 소속_충성론을 함께 지지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여기에는 "처음" 학교/전공/회사가 무엇이었느냐(순혈론)과 얼마나 오랫동안 그곳을 다녔느나(소속_충성론)을 함께 평가한다. 그러니까, 출신이 같다는 것은 예선전에 불과하다. 2차의 순혈론과 충성론을 동시에 충족하지 못하거나, 일부만 충족 한다면, 상황에 따라 배척될 수 있다. (**유의할 것.)


기준 많은 족보는 결국 기준 없는 족보다. 상황에 따라 그것은 묶였지만 묶이지 않을 수 있고, 묶이지 않았지만 묶일 수 있다. 나는 해마다 그들로부터 몇개의 매듭을 받고, 몇개의 매듭을 잃는다. (매듭의 총계는 수시로 변동된다.) 나도 언제는 매듭을 콜렉팅 해야만 하는 줄 알았다. 이 매듭은 표창같은 것인가?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퇴근하고 소파에 앉아 내가 어떤 출신이냐를 돌이켜보기도 하였다. (다시 한 번 깨우쳤지. 나는 너무도 경계인이다.) 지금은 글쎄다. 오랫동안 지켜보며, 이리묶였다 저리묶였다 하는 기준을 보고는 의미없는 일이란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필요에 따라 나를 묶도록 둔다/만든다. 성인군자는 아닌지라, 내가 편해지는 일을 거스르기는 어렵다. 다만, 나는 매듭짓지 않으리. 사람을 그렇게 구분짓기에는 각자의 역사가 너무도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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