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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누리 Jul 13. 2021

일탈에 관하여

작은 일탈과 큰 일탈이 있다.

노동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루틴과 일탈이 모두 필요하다. 둘은 한쪽이 있어야 다른쪽이 존재할 수 있는 상보적 관계이다. 한쪽을 잘 하면 반대쪽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한쪽이 완전히 사라지면 반대쪽은 의미를 잃는다. 얕은 경험상, 하나만 추구하다보면 일상 또는 일탈이 하나로 덩어리진다. 덩어리진 시간은 뭉툭하다. (뭉툭함은 지루함을 유발한다. 잡다한 망상을 일으키고. 나같은 불나방 인간은 금방 나가떨어진다.)



나는 어떤 루틴과 어떤 일탈을 갖고 있는가. ex. 나는 6시 30분에 일어난다. 화요일과 목요일은 7시에 요가원에 가고 커피 후 10시 출근. 나는 대개 이런 루틴을 즐거워하여 꼬박 유지하지만. 종종 짜증이 많은 아침에는 부러 10시에 일어나고 요가를 짼다. 작은 일탈이다. (그리고 방금도 요가를 쨌다. 사랑니 발치 핑계를 대면서 글을 쓴다.)



조금더 구체적으로, 일탈에는 1)작은 일탈과 2)큰 일탈이 있다. 1)작은 일탈은, 단 몇시간 이내에 소화 가능한 허튼 짓이다. 본인이 좋아하는 작은 일탈은 스시, 마사지, 택시다. 하나, 대충 때우는 식사가 지겨워질 즈음 지인과 정성이 많이 들어간 스시를 천천히 먹는다. 스시는 늘어진 식사 시간이나 한입거리의 음식이 여유를 뭉쳐놓은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둘, 왕왕 스트레스로 목뒤가 뻐근한 날이면, 퇴근후 열일 제쳐두고- 보너스 받은 날에 달아둔 회원권이 있는 아로마 마사지에 갔다가 샤워없이 숙면한다. 마찰의 열기와 미끄덩한 허브잎 냄새가 깊은 잠을 이끈다. 셋, 늦은 밤 멀리서 놀고는 장거리의 택시를 타고 뒷자리에서 오래된 노래들음서 야경을 보는 일도 좋아하는 일탈이다. 이동의 스트레스를 기사님께 맡겨두고, 창문을 스치는 풍경이나 바람, 노랫소리에 집중한다.



2)큰 일탈은 하루 이상의 노력이 드는 것이다. 가령, 주말에 남쪽이나 동쪽으로의 기차를 타거나, 등짐을 메고 산이나 바다에 가는 일. 익숙한 도시를 낯선 방법으로 이동해보거나. 모르는 요리를 갖은 정성과 시간을 들여 만들어내는 일이다. 달의 하루이틀에 나는 큰 일탈을 배치한다. 이런 큰 일탈은, 이어지는 고민이나 상념의 phase를 끊어준다. 한없이 추락하던 생각들도 큰 일탈 앞에서는 꼼짝없이 리프레시.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린다. 기울어진 상황을 평평하게 고쳐놓고 다음을 고민할 수 있게 한다.



이곳에 차마 적을 수 없는 일탈들도 무수히 있는데- 나는 이런, 대개 반듯하지만 종종 삐끗하는 리듬이 좋다. 매끈한 동그라미를 그리다가 열번에 한번쯤은 대뜸 죽 그어버리는 것이다. 모든 것을 꼼꼼히 색칠하려 들다간 다치거나 아픈 일이 많기에. 자연스러운 헛발질을 미리금 배치한다. 일이나 관계도 그렇다. 가끔 실망도 하고 말다툼도 하는 맛. (물론 사과는 필수) 마냥 반질반질 동그랗기보다 가끔 돌기도 있고 솜털도 있는 것이 재미있다. 돌이켜보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완성된 동그라미를 컨트롤하고 싶어했는데, 요근래는 반대가 되었다. 크레용이 부러진다던가 누가 손등을 툭툭 때려도, 하하 난 이미 더 맛탱이 간 그림을 그려놓았지- 한다. 대강 마음의 맷집 같은 것이 생겼나보다.





지난 금요일에는 배를 타고 통영에서 부산까지 12시간의 항해를 했다. ktx나 srt를 타면 서울에서 세 시간이면 가능한 부산행. 1. 터미널까지 택시 2. 통영까지 버스 3. 마리나까지 택시 4. 부산까지 요트. 도합 18시간을 들여 도착하였다. 역시나 재미있었다(ㅋㅋ). 일부러 돌아가거나 불편한 일을 만드는 일. 멀미도 하고 돈도 쓰고 어렵게 낸 연차도 이동에만 모두 사용했다. 긁어부스럼- 반대로청개구리- 그런 것들. 지속적으로 탐구할 예정이다 (다른 이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이러한 굳이-삐끗의 케이스들은 경험을 풍성하게 만든다. 또한 그것이 만든 돌기들은 누적되는 다른 경험과의 결합을 단단하게 만든다. 경험의 적분이 결국 인생 아니겠나. 나는, 풍성하고 단단한 생의 시간을 기대한다.






- 좌) 배가 그린 궤적이다. 확대하면 삐뚤빼뚤하다. 멀미의 구간도 있고 다급한 항로의 변경도 있다.

- 우) 마리나를 몇군데 가보진 않았지만, 지금까지는 대부분의 마리나에 배에서 사는 마린보이들이 있다. 그들은 인터넷에도 안나오는 지식과 각종 인맥의 집약체다. 검붉은 피부와 의기양양한 말투. 대화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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