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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누리 Aug 12. 2021

행복을 견인하는 것들

가벼운 일기

근래에 나의 행복을 견인하는 것은 다음 셋이다.

1) 아침의 운동, 2) 잡다한 지식을 글로 읽는 것, 3) 주말의 백패킹(또는 트래킹)을 계획하는 것.

세 가지가 만족스러운 이유에 관해서 생각해보았다.



1) 아침의 운동

- "이곳보다 나은 그곳은 없다."
2019년부터 우리집 냉장고 명당에 자리잡은 메모이다. 어디서 주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후회나 아쉬움. 그리고 그런것들이 야기하는 도피나 회피가 없는 삶을 갖고 싶었다.

그때부터. 후회는 없고, 문제가 있다면 정면돌파. 그곳에 대한 환상이나 기대는 없다. 나는 이곳에 집중한다.

- 그런 측면에서, 운동은 이곳에 집중하기에 아주 좋은 활동이다.

- 운동을 통해서 나는 이곳의 나에게 더 나은 HP 스탯을 부여할 수 있다.

- 더 나은 HP는, 같은 하루에 대하여 생각/감정을 풍부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한다.

- 어쨌든 나는 유한하고, 적어도 나의 숨이 붙어있는 순간들에는 가능한한 충만하기를. 나에 대한 사랑을 담아 10초를 더 버텨본다.


2) 잡다한 지식을 글로 읽는 것

- 올 여름 들어, 실용서적 코너를 자주 기웃거리고 있다.

- 이쪽의 책은, 주로 취미나 생활에 관련된 지식을 백과사전식으로 서술하고, 추가적인 tip이나 how-to를 함께 제공한다.

- 더 잘 알고 싶거나, 더 잘 하고 싶은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는 신호. 실용서적이 여느때보다 재미있게 느껴진다. 아무리 유투브 인터넷 거려도, 목차가 잘 정돈된 책만큼 새로운 지식의 기본기를 끌어올리기 좋은 수단이 없다.

- 태생이 tmi-러버, 나무위키-러버자잘한 지식들이 늘어나는 일이 아주 만족스럽다.

- 최근 읽은 것은, 커피에 관한 a to z, 샌드위치 레시피 n십여가지, 캠핑 음식에 관한 노하우 서적이다.


3) 주말의 백패킹(또는 트래킹)을 계획하는 것

- 1)과 2)의 혼합체이다.

- 1)에서 얻은 체력과, 2)에서 얻는 지식을 모두 활용할 수 있는 활동이다.

- 미지의 장소, 날씨, 사람, 이벤트.. 준비하는 과정의 장비 공부와 지름까지. 모든 것이 자극적이다.

- 지난 굴업도 백패킹에서 무거운 장비로 된통 당한 이후로(10-20kg 배낭을 메고 꽤 긴 거리를 걸어야했다. 블로그에는 아름다운 텐트샷만 나왔었는데...), 배낭 경량화(백패킹계에서 BPL로 불리는 부류의-)에 집중하고 있다. 중복 투자를 막기 위해서 오늘은 간만에 엑셀도 켰다. fix되지 않은 장비들의 셀에 연노랑 색깔을 넣으면서, MBTI P형 이면서 이런 순간에만 누구보다 치밀한 모습이 어이없어서 혼자 웃었다.

- 흩어진 지식을 채집하고, 채집한 지식을 몸으로 직접 활용하면서, 나만의 레슨드런을 얻는 일. 좋아하는 것의 집약체이다.


- 말이 나온 김에, 백패킹에 관한 짧은 영업글.

  백패킹의 매력은, 트래킹으로만 닿을 수 있는 자연을 하룻밤 내것처럼 지닐 수 있다는 것에 있다. 자동차가 가지 못하는 길. 더 오지로, 더 구석으로. 두발로 걷거나 물을 건너서 도달한다. 편평하고 바람이 덜한 땅을 찾았다면, 해가 지기 전에 손수 집을 짓고 숨 돌릴 새도 없이 밥물을 올려야 한다. 나 한 몸 하룻밤 잘 먹이고 재우는 것에 이렇게 많은 품이 든다.

  문명의 편리에 감탄하기 위해서 부러 불편함을 찾아간다. 그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말 그대로) '생존'의 능력이 조금씩 높아지는 본인으로부터 생의 자신감이 생긴다. '나는 어디서건 생존할 수 있다!' 유치하지만, '덤벼라 세상아!' 그런 부류의.

  집이나 밥. 그런 기본 생존을 만족하고 나면, 비로소 여유가 온다. 나뭇잎 부비는 소리, 파도가 부딪히는 소리, 다른 이들이 식사를 정리하는 소리. 낮은 소음들 사이에서 편안한 음악을 듣는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새벽을 기다린다.

  푸른 새벽이 오면 패딩을 입고 텐트를 나온다. 도시에서 가져온 당시 가장 좋아하는 커피집의 드립백을 뜯는다. 느릿느릿 뜨거운 물을 붓고 원두가 우러나기를 기다린다. 찬 공기를 타고 올라오는 커피향. 미소가 절로 번진다. 덜 깬 손으로 티탄컵을 마주 쥐고 적은 양을 홀짝이며 먼 곳을 주시한다. 절벽이나 안개, 구름이나 숲 그런 풍경. 내가 무엇을 볼 수 있을지는 예측불허이다. 자연이 내어주는 모습을 받아들인다. 어떤날은 온통 회색빛이었다가도 또 어떤 날은 푸른빛이 송구하다. 무엇이건 훌륭한 커피의 안주가 된다.



문득, 이렇게 좋아하는 일을 나열하고, 그런 이유를 한바닥이나 써낼 수 있는 본인이 대견하다. 스스로에 대한 이해가 더욱 높아진 것으로. 조금 더 우쭐해서 이야기해보자면, 그간의 경험을 비추어 보았을 때, 앞으로 1), 2), 3)의 항목들은 그때그때 나의 취향에 따라 또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있다. 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을 관통하는 가치관들은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이제는 잘 안다. 기억이 있는 십대 시절부터 늘상 내가 갖고 싶어하던 것들. 현재에 집중, 지적 탐구, 경험으로의 깨달음. 그런 귀중한 아젠다.


나는 이제 안다. 나는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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