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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누리 Jun 05. 2022

사랑은 결심

드디어 나는 자신 있다

내겐 두 번의 장기연애 경험이 있다.

한 번은 3년 6개월이었고, 그 다음은 5년이었다.

사실 두 인연을 합치면 20대가 훌쩍 지나간다.




나는 안다.

사랑은 결심이다.

하필 내 마음이 그럴 때. 그 곳에. 그 사람이. 그렇게 나타나서.

그 사람의 바닥까지 꽉 껴안기로 마음을 먹는거다.


그건 어떤 '사고'와 비슷하다.

사실, 다른곳 다른시에 만났으면 관심이 없었을만한 이도.

그 때. 그렇게. 그런 모습으로. 나타나서.

나는 사랑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앞선 관계에서, 상대가 운전 중에 크게 노래부르는 모습이 싫어서 헤어졌다가도.

그 다음 사람에게는, 상대가 운전 중에 크게 노래부르는 모습이 좋아서 만나게 된다.


그러니까 그건 어떤 조건이나 낱낱으로 결코 이야기할 수 없고.

내 마음이 그냥 그렇게 마음 먹는 것이다.




그러다가 보통 장기연애가 끝나는 경우는

인생의 페이즈가 변화할 때 발생한다.


학교, 취업, 결혼 등의 이유로 새로운 가치관의 정립이 필요한 영역이 생기고,

그 때 혼란이 찾아온다.


새롭게 다가온 인생의 페이즈.

그 아래에서 이 사람과는 지내본 일이 없었으므로.

게다가 그 쪽에 대한 내 가치관도 물렁하기 그지없다.

잘 모르니까 바깥을 참고하긴 하는데.

이게 맞긴 한건가.

어쨌든 손 닿기 쉬운 표준 교본에 서로를 껴맞춰보는거다.


나의 큰 이별들도 모두 그럴 때 발생했다.

내가 겪어본 일 없는 인생의 사건들 앞에서.

나도 나를 모르고. 상대도 이건 처음이라. 나와 같이 헤메는 입장이고.

마음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들 앞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다행히 그동안은. 대개 고맙게도.

나보다 성숙한 상대들을 만나서

그럴 때마다. 늘 꼭 잡아줬다. 바깥의 말들은 우스워. 우리는 잘 할거야.

무엇이 걱정이니. 누구보다 잘 해낼거야. 그리고 잘하지 못하면 어때.

우리가 함께인데. 더 바랄게 있냐고.



그러나 야속하게도.

그땐 몰랐다. 내가 파도임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니까.

거센 파고가 찾아왔을 때마다. 상대를 조마조마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건 결코. 사랑하는 이에게 해서는 안될 일.

조마조마한게 뭐가 좋다는 말인가.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상대가 안정감을 느끼는 것.



어쨌든 지금. 우리가 '동시에' 서로를 좋아한다는게 유일하게 주목해야할 사실이다.

그런 일이 어떻게 쉽게 일어나는가.

그땐 의심했지만. 이젠 안다. 정말 함께이면 해낼 수 있는. 이겨낼 수 있는 일들이 배로 많아진다.

그것이 사랑.

예술과 미디어가 그토록 이야기하는 사랑의 힘.





나는 누굴 사랑하는 일이 정말 어려웠어서.

찾아오는 마음 하나하나에 정말 진심이게 된다.


누가봐도 부족한 구석 없는 사람을 사랑해보려고 해도.

좋은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은 다르다는 사실을.

그건. 그 사람의 탓도. 나의 탓도. 그냥 그 때. 그 곳에. 그런 마음이었어서.

이제는 잘 안다.

어떤 '사고' 없이는 정말 어려워.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사랑은 결심이다.

어렵게 찾아온 사람의 소중함과 감사함으로.


어떤 일이 생겨도 너를 놓지 않겠다는 결심.

어떤 문제도 같이 해결해보겠다는 결심.


그 결심만 기저에 있으면. 서로를 상처주는 일도.




내 사랑의 유일한 원칙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검정도 하양도 다 그 사람. 내가 사랑하려고 결심한 그 사람.

나는 두가지를 다 사랑한다. 내게도 검정과 하양이 있고.

우리는 완벽하지 않은 인간 조각.


내가 바꾸려하지 않더라도, 사람은 계속 바뀐다.

입맛대로 바꾼다고 그게 유지될지도 모를 일이고.


내가 하는 일은. 오직. 상대의 구멍난 곳을 채우려 노력하는 것.

서로의 역사를 읽고. 결핍을 이해하고.

그것을 안아주다보면. 자연히 차오른다. 사람은.

각자의 타임라인이 조금씩 다르더라도. 언젠가는 마주친다.

그렇게 채워주는 이에 대한 소중함과 감사함을 서로 느끼고.

점점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관계가 된다.




나는 변하는 상태값에 걸지 않는다.

직장이나 연봉. 자산. 건강. 몸매.

모두다 변하는 것들.


그것들이. 처음에 '사고'를 일으킬 때 매력으로 작동할 수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건 결코. 그 사람이 아니다. '지속' 앞에서 일시적인 단면일 뿐.

백세 시대. 70년간 무슨 일이 있을 줄 알고.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상대는.

나와 사랑관이 비슷한 사람이다.

상대의 모든 굴곡과 변화를 함께할 결심을 할 줄 아는 사람.

힘든 일 속에서도 세상을 냉소하며 한번씩 씩 웃을 수 있는 사람.




길고 짧은 연애로.

또, 친구와 동료와의 관계를 통해.

마지막으로, 성인이 된 후, 가족들과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더욱 성숙한 관계 맺기를 하면서.


이제 나는 더욱 단단해졌다.


우선, 가장 대견한 일은. 갈등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태도를 배웠다.

이젠 안다. 갈등을 덮어두어선 안된다. 찜찜한 구석은 너무 늦지 않게 잘 터뜨려야 한다.

마치 여드름처럼. 가만히 두면 못생긴 곰보자국이 된다.

그때그때 깨끗하게 잘 터뜨려주면 예쁘게 아무는 것들.


갈등을 잘 해결하는 일은 관계를 더 견고히 해주는 것.

갈등이 생기면 오히려 감사하기도 하다. 나는 갈등을 해결할 자신이 있으니까.
우리는 더 깊어질 수 있을거야.


또, 상황과 관계를 분리할 줄도 알게 되었다.

상황은 해결하면 된다. 그 안에서 관계는 관계대로 지속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편한 상황 속에서, 감정을 다스린 뒤 이야기할 줄도 알게 되었다.

이 관계를 지속하려면, 진심이 아닌, 일시적인 분노의 마음으로 감정적 생채기를 만들어선 안돼.

감정이 올라서면 진심이 아닌 더 나쁜 말을 하기 마련이다.

야속하게도, 감정이 섞인 말은 잘 지워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람인지라. 행여나. 그런 말을 하고나면 꼭 반드시 진심으로 사과하려고 한다.

다독다독. 상처가 나지 않게.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건 진심이 아니었어.



드디어 나는 자신 있다.

앞으로는 나를 믿고.


나와 사랑관이 비슷한.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상대가 나타나면.

누구보다 단단한 관계를 만들 수 있을 것.




비로소 평화가 찾아왔다.


플라톤이 <향연>에서 그랬듯,

인간이므로 반쪽에 대한 근본적인 갈증은 있더라도.

어떤 조급증이나. 그것을 머리로 해결해낼 수 있다는 태도를 내려놓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드디어 고요.

바깥이 흐릿해지고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 찾아온다.


드디어 나는 자신있다.



the myth of aristophanes - 플라톤 <향연>



반복재생 중인 노래도 공유합니다.

사랑 가득한 저녁 보내세요 ♡


최기덕 - 다이아몬드

https://youtu.be/Qvavpj87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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