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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누리 Jun 20. 2022

비범하다는 착각

정말로 원하는 것을 원해.

0.

저녁 8시. 야근을 한 것도 아니고 야근을 안한것도 아닌 애매한 퇴근 시간.

샌드위치도 먹고 바깥도 보고. 느긋하게 작업하는걸 좋아하는 본인에게는 딱 좋은 시간대다.

그 시간이면, 한낮의 뜨거운 기온도, 사람들의 바쁜 기운도 가신다.

한 김 빠진 거리를 가로질러 나는 집으로 간다.



반틈 걸었을까. 어린이공원에서.

하얀 공이 돌돌돌. 발치로 굴러온다.

그리고 공의 뒤로, 허리춤만한 어린애가 글로브를 낀 채 종종 뛰어온다.





주저앉아 공을 줍는다.

달려오면서 연신 고개를 꾸벅이는 어린애의 글로브로 작고 흰 공을 가볍게 던져넣는다.


야구공을 쥐다니. 그리고 어린이와의 교감이라니.

이것참 얼마만의 경험인지.




종일 스펙 문서를 읽느라 무뎌진 감각을 깨운다.

우연인지 인연인지 아무도 모를. 그 공이.








1.

언제인지도 모를 대화를 꺼내온다.

포크를 달싹거리며 낮의 취기로 나눈 대화.



알 수 없는 오일-아스파라거스-관자-트러플 순.



> 내가 말이야. 끊임없이. 추구하고 살았더라고. 그렇게 정말 많은걸 쌓았거든? 경험도 자신감도. 다 거기서 온거지. 그런데 이번에 알게 된거야. 내가 안을 수 있는 건 한정적이었고.

  언젠가 부터는. 그때부터는. 무언갈 추구하면서 새로운 것을 얻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 예전의 것을 잃고 있었다는 걸. 어떻게 그걸 몰랐을까. 그 장면 한가운데에 있을때는 정말 몰랐어. 나는 계속 '나아가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이제는. 이제는. 지키는 삶을 살아보려고. 지켜보려고 하고 있어. 몰랐는데. 내가 정말 많은걸 가졌더라고. 부족함이 없어. 난 이걸 지킬거야.

해보니까, 지키는 것에도 엄청난 에너지가 들어. 추구하는 것 못지않게. 몰랐던거지 예전에는. '전진(前進)'만이 플러스라고 생각했으니까.



건너편의 그녀가 말한다.



> 그게. 그게바로. 평범함을 인정하는 삶이야. 사실은 비범한 사람은 없더라고.

비범함에 길들여진 사람만 있을 뿐이야.






2.

어려운 문제가 주어지면.

나도 모르게 반짝거리는 눈빛과, 이어지는 질문이 자동반사 된다.

이건. 내가 00년간 모범생 내지 우등생으로 삶을 연명하면서 길러진 무의식적인 행동.

그게. 문제나 상황이 어려울 수록, 이걸 풀어내야만한다는 외부적인 의지치가 자동으로 발동한다.


걱정마시라. 상사 내지 동료를 다독이고는.

그 때부터 쉼 없이 굴러가는 머릿속.

어떻게 풀어야 하지...


학습된 비범함의 행동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쥐어짜내면 나온다.

어떤 결과물이.


사실은 비범함이라기보다.

남들보다 배로 머리를 굴리고는 아닌 척하는.

누구보다 노력에서 기인한 결과물.

지독한 노력파. 태연한 척 하지만 쉼없이 생각한다.

그렇게 소진된다.





1’.

다시 그 대화로.


> 글쎄. 10대 20대 때 이미 연장은 다 모은거야. 그러니까 지금 드래곤볼이 다 모였다고. 그런데도 계속해서 더 좋은 구슬이 있을지도 몰라. 라고 하면서 새로운 구슬을 담고. 그렇게 모아둔 구슬을 깨먹고. 그런 것의 연속인거지.


과연. 과연 우리는 나아지고 있는걸까?

나아지는 것과 변화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지.


> 맞아. 어쩌면 구슬이 다 모였다면.

그때부터는 구슬을 운영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할지도 몰라. 사실 쥐어보면 알겠지만. 여기서부터 얻을 수 있는 구슬은 그놈이 그놈이거든.

오히려, 내가 가진 구슬을 잘 알고 잘 쓰는게 중요한 시기가 오고 있는걸지도 모르겠어.







3.

침대로. 침대의 단상.


비범함은 착각 또는 주입.

사실은 평범함을 인정하고.

평범함 속에서 운영의 최적체를 찾아내는 일이 베스트일지도.



존재하지도 않는 비범한 본인을 대상으로.

평범한 본인을 비교하고 절하하는 행동을 멈추어야.

(기대한 자신에게 못미치는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것. 현대에 만연한 병리적 행동이다.)



알아야 한다. 비범함의 가치를 외치는 거대 미디어가 바라는 것은.

바깥으로 부터의 갈망에 흠뻑 젖은.

충실한 소유-불만족-인간임을.








4.

우리는 주체적으로 갈망해야 한다.

> 정말로 원하는 것을 원해.





저녁 8시 무렵의 도시. 얼마나 아름다운지.


https://youtu.be/vqpZGcdRBEE

이번에도 좋아하는 음악을 공유해요.

본인이 ‘둥탁둥탁-’ 소리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된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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