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가 나를 볼 때마다 하는 말이다. "아니~ 돈도 잘 버는 애가 대체 왜 그렇게 돈돈거리면서 살아? 그렇게 살지마. 적당히 쓰고 인생 즐기면서 살아~" 엄마랑 같이 살고 있으니 거의 매일 듣는 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 말을 들을 때마다 나도 늘 생각한다. 나는 어쩌다 이렇게 '돈돈 거리는 애'가 되었을까.
시간은 한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 부모님은 나에게 경제관념과 자립심을 심어주겠다며 20살이 되자마자 '너의 생활비는 너가 직접 벌어서 써라'라면서 용돈을 주지 않을 것을 선언하셨다. 감사하게도 교통비, 통신비 등 고정비용과 대학 등록금은 부모님이 내주셨지만 내가 먹고 노는데 쓰는 순수 생활비는 내가 벌어서 써야 했다. 그렇게 나는 수능이 끝난 직후부터 과외를 하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때 용돈을 받아서 쓸 때는 참 돈 개념이 없었다. 기숙사 학교를 다녔는데 매월 초 아빠가 체크카드에 20만원을 채워주면 매점에서 과자 사먹는데에만 돈을 다 써서 2주면 동이 나버렸다. 그러던 내가 한 달에 과외비 40만원으로 친구도 만나고 연애도 하고 쇼핑도 하고 맛집 탐방도 하려니 돈이 부족할 수 밖에 없었다. 아마 그때부터 소비를 절제하는 습관이 몸에 베인 것 같다. 뭔가 사고 싶어도 충동구매를 자제하고, 친구를 만나고 싶어도 통장 잔고가 거덜난 때에는 약속을 미루면서 그렇게 적절하게 소비를 통제했다.
그 이후에는 과외를 늘리면서 일부 금액은 예적금에 묶어두기도 하면서 여윳돈을 만들어 나갔다. 큰 돈은 아니었지만 400만원 정도를 모아 교환학생 때 생활비로 사용하기도 했다. 교환학생을 다녀온 이후로는 과외가 끊겼다. 그때부터는 아빠에게 카드를 받아서 생활했는데 카드 사용 내역이 아빠한테 알림이 가는 것도 싫고 돈을 쓸 때마다 괜한 눈치가 보이는게 싫었던 것 같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드림클래스나 인턴을 하면서 돈을 벌었다.
그것도 잠깐이었다. 취업준비생이 되면서부터는 취준에 올인하느라 오로지 아빠가 주는 용돈 30만원에 의존하면서 살았다. 졸업유예한 취준생이니 일주일에 1~2번 남자친구를 만나는 것을 제외하면 누굴 만나지도 않았고 책값, 시험응시료, 교통비, 통신비 등은 여전히 아빠가 따로 내주고 있었기 때문에 30만원의 용돈이 적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취준생이라는 내 신분 때문이었을까, 그 30만원이 너무나도 족쇄같았다.
그리고 항상 부모님과 마찰이 있을 때마다 치사하게 돈으로 협박하는 것도 너무 자존심이 상했다. 부모님과 크게 싸울 때 항상 끝은 '너 그런식이면 등록금 너가 내', '그렇게 멋대로 굴거면 독립해'였다. 속된 말로 더럽고 치사해도 내가 손해였기 때문에 돈 앞에서는 굴복할 수 밖에 없었다. 아마 이게 내가 이렇게 돈돈거리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나도 모르는 새에 마음 한켠에 '꼭 돈 많이 벌어서 엄마아빠가 저런 말을 해도 당당하게 그래! 나갈게!라고 해야지'라는 생각이 조금씩 생겼던 것 같다. 아, 웃긴건 어느정도 경제적으로 독립한 지금은 오히려 엄마아빠에게 빌붙을 수 있을 때까지 빌붙는게 이득이라는걸 깨닫고 여전히 깨갱하는 중이다.
돈돈거리게 된 건 오히려 취업하고 난 이후에 더 심해진 것 같다. 2020년 코로나가 터지고 뭘 사도 주식 수익률이 대박났던 그 시기에 나는 취준생이었기에 돈이 없었다. 2021년 전국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던 시기에 나는 이제 회사생활을 한 지 1년도 안된 사회초년생이었기에 또 돈이 없었다.
그리고 이직을 한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작년에 상장한 대어 중 하나이다. 스톡옵션 행사가와 행사 당시 주가로 수익률을 계산해보니 1,000%가 넘는다. 당연히 회사에는 일반인은 몇십년을 모아도 못 모을 돈을 한번에 벌어 큰 부를 이룬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나는 상장하고 한참 후에 입사했기 때문에 어떠한 떡고물도 받지 못했다. 각오하긴 했지만 회사에서 사람들이 스톡옵션 이야기를 할 때마다 상대적 박탈감이 느껴지는건 어쩔 수가 없다.
남들과 비교하면 한도 끝도 없이 불행해지기만 한다는 것을 알지만 변명하자면 환경이 환경인지라 하기 싫어도 비교를 하게 된다. 그리고 그 비교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경제적 자유를 이루는 것밖에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걸 알기 때문에 돈돈거리면서 살게 되는 것 같다.
가끔은 내 모든 관심사가 재테크, 부동산, 주식에만 쏠려 있고 내 모든 일상이 돈으로만 차있는 것 같아서 현타가 올 때도 있다. 심지어 남자친구조차 나와 성향이 비슷해 우리 대화의 70%는 부동산 이야기이다. 20대 아직 젊고 한창 놀고 즐길 나이인데 엄마 말대로 왜이렇게 돈돈거리면서 인생을 못 즐기면서 살지? 아무도 나한테 이렇게 살라고 하지 않았는데 왜 나는 자발적으로 이런 삶을 사는거지?라는 생각이 안든다면 거짓말이다. 이렇게 돈돈거린다고 해서 내 주식 수익률이 훌륭하다거나 서울에 집 한채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기에 더더욱 씁쓸한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돈돈거리지 않으면 나중에 나이 먹어서 정말로 돈이 없어서 돈돈거리는 삶을 살게 될 수도 있을거란 두려움이 더 크다. 100세 시대인 지금 60세에 은퇴한다 한들 40년 동안 먹고 살 노후 자산을 지금 젊을 때 만들지 않으면 노인이 되어서 빈곤에 허덕일게 뻔하다. 심지어 사기업에 다니기 때문에 60살까지 회사를 다닐 가능성도 희박하고 내 노후를 2050년이면 고갈될거라는 국민연금에 기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회사생활을 60살까지 하고 싶진 않다. 3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회사원으로 살고 싶진 않다. 하지만 생계형으로 돈을 벌어야 하는 나에게 회사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필수이다. 이 생활을 빠르게 벗어나려면 결국 지금부터 돈돈거리면서 아끼고 모으고 불려서 자산을 만드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가끔은 현타가 오고 스트레스를 받아도 결국엔 이런 삶으로 돌아가는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