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찾아볼 수 없었던 인플레이션 덕분에 화폐 가치가 뚝뚝 떨어지며 실시간으로 가난해지고 있다. 자산 시장도 휘청휘청하니 투자에 대한 관심은 사그라들고 예적금으로 돈이 몰리고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 다시 짠테크, 무지출 챌린지 같이 극단적으로 돈을 아끼고 쓰지 않는 것이 새로운 재테크 방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나는 무지출 챌린지를 하지 않는다. 돈 모으는걸 좋아하고 불필요한 소비하는 것을 싫어하지만 무지출에 집착하진 않는다.
한 때 극단적으로 소비를 줄여봤던 때가 있었다. 그 땐 점심시간에 동기들과 밖에서 밥 한끼 먹고 커피 한잔 사마시는게 그렇게 아까웠다. 점심은 어쩔 수 없이 사먹어야 했지만 절대 끼니 당 1만원을 넘기지 않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8천원짜리 제육볶음을 먹으러 가서 7천원짜리 계란말이를 하나 더 시키자는 동기가 얄미웠다. 엔빵하면 겨우 2~3천원 더 내는건데도 뭐가 그리 아까웠는지 모르겠다.
회사에도 커피 머신이 있는데 (물론 맛이 없지만) 굳이 밖에서 4~5천원을 주고 커피를 사먹어야 하는건가 싶었다. 그래서 동기들이 커피를 마실 때 나는 아침에 커피를 이미 마셨다는 핑계로 먹지 않았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정말 맛있는 저녁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필수 고정비를 제외하곤 돈을 쓰지 말자며 내 욕구를 억눌렀다.
그런데 그렇게 하니까 인생이 너무나도 불행했다. 나는 겨우 그 돈 몇 푼을 아끼자고 당장의 내 행복을 계속 억눌러왔다. 원체 사치를 부리는 스타일이 아니라 내가 원했던건 대단한게 아니었다. 그냥 가끔 맛있는 커피를 먹고 싶을 때 한 잔 사먹는 여유, 정말 힘들었던 날에 좋아하는 초밥을 먹는 행복 그냥 그런 소소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겨우 5천원, 1~2만원이 그렇게 아까워서 내가 원하는걸 외면했다.
억지로 억지로 지출을 억누르다보니 결국 크게 터졌다. 매달 월급의 8~90%씩 저축해서 통장 잔고는 나름 빠르게 늘어나긴 했지만 전혀 즐겁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이 생고생을 해도 한달에 겨우 250~260밖에 저축을 못한다고? 더 쥐어짜야 하는거 아냐? 나름 많이 모으는거 같은데 왜 통장 잔고 앞자리는 바뀔 생각을 안하는거지? 이렇게 아등바등 모아도 어차피 집도 못사고 설령 집을 사더라도 다 은행 빚이라 또 빚갚으면서 쪼들려 살텐데 그럼 나는 평생 이렇게 아등바등하면서 누릴거 하나 못누리고 살다 죽는건가?' 생각이 극단으로 치달으며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리고 딱 한 달,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써보자! 하고 저축을 신경쓰지 않았다. 물론 그럼에도 본투비 짠순이에 몸에 배인 절약 습관이 있어 대단히 많이 쓰지도 않았다. 그치만 그러고 나니 마음이 너무너무 편해졌다. 그 뒤로는 억지로 내 욕구를 꽉꽉 눌러가며 반드시 돈을 아껴야만 해!!라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커피는 회사 커피머신을 이용하고 구내식당을 이용하지만 스트레스를 받진 않는다. 마음가짐이 다르다. 악착같이 나는 절대로 한 푼도 쓰지 않을거야. 회사 갈 땐 교통비만 지출할거고 밖에서 커피는 절대 사먹으면 안돼. 저녁도 외식 배달 절대 금물, 냉장고에 더 이상 뭐가 나오는게 없을 때까지 파먹는다!! 돈 아껴야 하니 약속도 절대 안잡아!! 이런 각오는 정말 오래 갈 수가 없다. 특히나 원래 과소비러였다면 정말정말 쉽지 않다. 나같은 본투비 짠돌이도 쉽지 않았다. 눌러왔던 욕구가 지출 데이에 폭발하면서 실제로 쓰는 금액은 무지출챌린지를 안할 때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많을 수도 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의례적으로 새 옷을 사는 것, 나중에 필요할 것 같아서 세일할 때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쟁여놓는 것 등 굳이 돈을 쓰지 않아도 되는 것들부터 줄이는 것이 극단적으로 소비를 줄이는 것보다는 오히려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현명한 소비습관을 들일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